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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말인지도 모르고 쓰는 일본말

[2016-08-27, 06:57:23]
[우리말 이야기 32]
일본말인지도 모르고 쓰는 일본말

우리말은 한자뿐 아니라 일본말, 서양말 등 다른 말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근대 서양 문명을 일본을 통해 들여온 까닭에 새로운 개념어들은 거의 다 일본 것을 받아들였다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일본은 서양 문물을 들여오면서 그에 어울리는 표현을 동양 고전에서 찾아내거나 새로 이름 지어 붙였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체육’, ‘환경’, ‘~주의’, ‘~식’, ‘~적’ 같은 말들이 다 그런 것들이지요. 이런 용어들은 한중일 3국에서 공통으로 쓰이는 것도 많거니와 이제 와서 우리식 용어로 바꾸자고 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들과는 달리 버젓이 우리말이 있는데도 일본말이나 일본식 표현을 일상생활에서 멋대로 섞어 쓰는 것은 별로 보기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음식점(사라, 스시, 쓰끼다시, 소바…)이나 옷가게(나시, 가라, 마이…), 공사장(단도리, 와꾸, 데모도…) 등 일부 업종에서 누가 보아도 확실한 일본말을 습관처럼 쓰는 경우는 구태여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일본말인지조차 잘 모르고 쓰는 경우 몇 가지만 살펴보고자 합니다.

요즘 방송마다 퀴즈 프로그램이 꽤 많습니다.

퀴즈 진행자들은 종종 “이 문제의 정답은 ‘땡땡’의 ‘땡땡땡’입니다.” 이런 식으로 힌트를 줍니다. 여기서 ‘땡땡’은 “학교종이 땡땡땡...” 할 때의 그 ‘땡땡’으로 착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우리말이 아니라 한자어 ‘점점(點點-일본에서는 点点)’을 일본 발음(てんてん ⇒ 덴덴)으로 읽은 것이지요. 따라서 ‘땡땡’ 대신 “정답은 ‘2글자’의 ‘3글자’입니다.” 식으로 바꿔 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아가 동글동글한 방울무늬를 두고도 흔히 ‘땡땡이무늬’라고 하는데, 이 역시 ‘물방울무늬’ 또는 '방울무늬'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옷과 관련한 일본말이 많습니다.

특히 ‘곤(こん)색’, ‘소라(そら)색’ 같은 색채어들이 그렇습니다. ‘곤’은 ‘감색(紺色)’의 ‘검푸를 감(紺)’ 자를 일본 발음으로 읽은 것이고, ‘소라’는 ‘하늘’이란 뜻의 일본말이지요. 따라서 이들은 ‘진남색’ 또는 ‘진푸른색’과 ‘하늘색’으로 쓰는 것이 옳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곤색’을 ‘감색(紺色)’이라고만 풀어 놓았는데, ‘감색’이라고 하면 ‘검푸른 색’보다는 ‘먹는 감’의 ‘주황색’이 떠오르기 때문에 색채어로는 별로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한편 요즘 갑자기 널리 쓰이고 있는 ‘뒷담화’라는 말은 원래 당구 용어에서 온 것입니다.

당구공이 원래 의도했던 대로 맞지 않고 제멋대로 굴러가다가 우연히 맞아 점수가 나는 것을 ‘뒷다마’(‘다마’는 구슬, 공을 뜻하는 일본말입니다. 당구장 또한 일본어가 활개 치는 곳이지요.)라고 했습니다. 점수 낸 사람이야 기분 좋겠지만 공이 비껴났다고 생각하여 안도했던 상대방으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겠지요.

3~40년 전에도 이 '뒷다마'는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는' 행위 또는 ‘아무 대비 없는 사람을 기습하는’ 행위를 뜻하는 말로 종종 사용하곤 했습니다. 그것이 몇십 년 지나다 보니 당구장에서 생긴 말인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뒤+담화(談話)’로 추리하여 ‘뒷담화’가 된 듯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말+한자’라는 어색한 조어 방식뿐 아니라 ‘담화’라는 말이 ‘공적, 공개적인 이야기’라는 뜻이므로,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을 뜻하는 ‘뒷담화’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사전에는 비슷한 뜻으로 ‘뒷공론(公論)’이라는 말이 실려 있기도 하지만, 아예 순우리말인 ‘뒷얘기’나 ‘뒷말’ 정도로 바꾸어 쓰는 게 좋을 듯합니다.

우리가 별다른 생각 없이 쓰고 있는 수많은 용어들이 사실은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고 우리말을 풍부하게 해준 일본의 공을 인정해 줘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불필요한 경우까지 일본말을 뜬금없이 섞어 쓰는 일은 삼가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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