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메뉴

상하이방은 상하이 최대의 한인 포털사이트입니다.

[우리말 이야기] ‘사전오기’의 신화, 홍수환

[2016-10-28, 20:18:04]
[우리말 이야기37]
‘사전오기’의 신화, 홍수환

얼마 전 파나마의 국회의원 엑토르 카라스키야 씨가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그 말이 왜 생겼는지 잘 모르는 젊은 세대들도 별 생각 없이 가끔 쓰는 ‘사전오기(四顚五起)’란 말이 생겨나게 한 카라스키야가, 권투선수가 아니라 한 나라의 국회의원으로서 방문한 겁니다.

우리나라가 아직 여러모로 시원찮던 1977년의 일입니다. 홍수환이란 권투선수가 멀리 파나마까지 나가서 두 번째 세계챔피언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영화의 한 장면보다도 더 멋지게…….

그 경기에서 홍수환 선수는 2회에만 네 번이나 다운되었습니다. 처음 한두 번이야 얼떨결에 당한 거겠거니 하고 숨을 죽이면서 중계방송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세 번, 네 번…… 잇따라 큰대(大)자로 뻗어 버리는 모습을 보고는, 이젠 다 끝났다며 하나 둘 텔레비전 곁을 떠나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3회가 시작되자마자 이번에는 홍수환 선수가 상대편을 느닷없이 두들겨 패기 시작한 것입니다. 뜻밖의 공격에 어리벙벙해진 상대 선수는 숨도 못 돌리고 무수히 얻어맞다가 마침내 바닥에 완전히 드러눕고 말았습니다.

방송마다 그 장면을 몇 날 며칠을 두고 골백번쯤 되풀이해서 방영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래도 싫증내기는커녕 흐뭇한 마음으로 보고 또 보고 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신바람 나는, 어떤 영화나 소설보다도 더 극적인 경기였습니다. 그 무렵처럼 권투가 인기 있었던 적도 없었을 겁니다. 

‘사전오기’란 말은 바로 이때 생겨났습니다. 홍수환 선수가 네 번 쓰러졌는데도 그때마다 일어나서 마침내 상대를 때려눕혔으니, ‘칠전팔기(七顚八起)’가 아니라 ‘사전오기(四顚五起)’라는 거죠. 그러나, 사실은 이야말로 ‘칠전팔기’라는 말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경우였습니다.

‘칠전팔기’라는 말은 이렇게 셈해야 옳습니다.

‘한 번 쓰러졌다 두 번째에 일어나고, 세 번째로 다시 쓰러졌다 네 번째 일어나고, 다섯 번째 쓰러졌다 여섯 번째 일어나고, 일곱 번째 쓰러졌다 여덟 번째 일어나는 것’-이것이 바로 칠전팔기의 본뜻입니다. 그러니까 홍수환 선수는 틀림없이 ‘칠전팔기’했던 겁니다. 사실 ‘칠전팔기’라는 말은 이 밖에 다른 풀이 방법도 없습니다.

그래도 ‘사전오기’가 옳다고 우긴다면 문제가 또 있습니다. ‘사전사기(四顚四起)’라면 서양식 왕복 개념으로 따져서 말이 되겠지만, ‘사전오기’는 아무리 따져 봐도 성립할 수 없습니다. 억지로 ‘사전오기’를 만들자면 먼저 누워 있기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한 번 일어나고 나서 한 번 쓰러지고, 다시 두 번 일어나고…… 이렇게 따져야 네 번째 쓰러지고 다섯 번째 가서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누워서 경기를 시작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격투기도 아니고.

어쨌든 ‘사전오기’란 말은 비록 사전엔 올라 있지는 않지만, 아직도 신문이나 방송에서 버젓이 쓰는 걸 곧잘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삼전사기’니 ‘오전육기’니 하여 재치 있게(?) 응용하는 것까지 눈에 띕니다. 이번에도 카라스키야 씨가 오자 신문, 방송마다 또 다시 ‘사전오기’의 신화를 추억하기 바빴습니다.

새로운 말을 만들어 쓰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닙니다. 말광을 넓힌다는 점에서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렇듯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만들어서는 곤란합니다. 코미디 프로그램 같은 데서 말장난을 하는 것조차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적지 않은데, 모범을 보여야 할 언론이 이런 몽매한 표현을 써서는 안 되겠지요.

ⓒ 상하이방(http://www.shanghaiba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80년 이후 현재까지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전교조신문(현 교육희망)>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월간 <우리교육> 기자 및 출판부장(1990~1992), <교육희망> 교열부장(2001~2006) 등을 역임했다. 1989년 이후 민주언론운동협회가 주최하는 대학언론강좌를 비롯하여 전국 여러 대학 학보사와 교지편집위, 한겨레문화센터, 다수 신문사 등에서 대학생, 기자, 일반인을 대상으로 우리말과 글쓰기 강의를 해오고 있다. 또한 <교육희망>, <우리교육>, <독서평설>, <빨간펜> 등에 우리말 바로쓰기, 글쓰기(논술) 강좌 등을 기고 또는 연재 중이다.
ccamya@hanmail.net    [김효곤칼럼 더보기]

전체의견 수 0

댓글 등록 폼

비밀로 하기

등록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1. 국경절 연휴, 中 ‘유커’ 14만 명..
  2. [아줌마이야기] 예민해서 참 괴롭다
  3. 장쑤 우시 고가도로 붕괴…3명 사망∙..
  4. 즈푸바오, 연 수익률 3.68% ‘위..
  5. 新 주택 대출금리, 베이징↑ 상하이↓
  6. 중국인이 뽑은 ‘여행하기 가장 안전한..
  7. 상하이 공항, 입국 수속 25분 빨라..
  8. [10.9] NBA, 말 한마디에 최..
  9. 상하이 분리수거 달성률 15%→80%..
  10. NBA, 말 한마디에 최대 해외시장..

경제

  1. 국경절 연휴, 中 ‘유커’ 14만 명..
  2. 즈푸바오, 연 수익률 3.68% ‘위..
  3. 新 주택 대출금리, 베이징↑ 상하이↓
  4. NBA, 말 한마디에 최대 해외시장..
  5. 국경절 전국 관광수입, 장쑤성 1위
  6. 국경절 연휴, 누워서 9000억원 벌..
  7. '글로벌 경쟁력 보고서' 中 28위,..
  8. 마윈, 3년 연속 후룬 중국 부자 1..
  9. 중국 2050년 3명 중 1명 노인
  10. 세계 부자 도시 1위 뉴욕, 상하이는..

사회

  1. 장쑤 우시 고가도로 붕괴…3명 사망∙..
  2. 중국인이 뽑은 ‘여행하기 가장 안전한..
  3. 상하이 공항, 입국 수속 25분 빨라..
  4. 상하이 분리수거 달성률 15%→80%..
  5. 애플, 홍콩경찰 추적앱 결국 삭제…中..
  6. 페이스북 中 직원 투신자살 소식에 누..
  7. 中 19개 기업 NBA 협력 ‘전면..
  8. 中 장기 기증∙이식 세계 2위…1위는..
  9. 中 오픈마켓도 전자담배 미국 해외배송..
  10. 항저우 출신 '마윈', 고향 습지보호..

문화

  1. [책읽는 상하이 54] 내가 너에게..
  2. 눈과 귀를 사로잡는 10월 공연
  3. 설리 사망에 中서도 애도 물결 “믿을..

오피니언

  1. [아줌마이야기] 예민해서 참 괴롭다
  2. [아줌마이야기] 분발하자 국산펜!

프리미엄광고

adadadad

플러스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