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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아들의 짝사랑

[2017-11-14, 14:35:50] 상하이저널

우리집 방년 9세 2호님은 몇 년 째 지독한 짝사랑에 빠져 있다. 그 대상은 다름아닌 불특정 다수의 친구들. 스쿨버스에서 내리면서부터 시작되는 친구 앓이는 쉬는 날 정점을 이룬다. 눈을 뜨면서부터 시작되는 친구타령에 연락의 손길이 바빠지다가도 다른 가족의 오붓한 시간을 깨는 것 같아 망설여지고 이런 상황을 아이에게 이해시키다가 가끔은 큰소리도 나오는 일상의 반복이 이어지고 있다.


백일도 되기 전부터 낯을 심하게 가렸던 아이는 남의 집 현관에 들어서기만 해도 자지러졌다. 덕분에 오래간만에 회포를 풀고 싶어 어렵게 나선 외출은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문간방에 둘이 갇혀 있거나 아이가 잠들기를 기다려 잠깐 마시는 차 한잔으로 만족해야 했다. 둘이 있을 때는 누구보다 잘 먹고 잘 놀고 자던 아이가 제 삼자만 나타나면 쉬지 않고 울었다. 이렇게 시작된 낯가림은 네살 어느 봄날 시작된 어린이 집 등원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시계도 못보는 아이가 저녁 여덟시만 되면 다음날 어린이집에 안간다고 울고불고 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둘째의 출산을 앞둔 남산만한 배를 하고 등에 큰아이를 업고 어르고 달래며 등하원을 할 때면 지나가던 사람들의 안쓰러운 눈빛은 모두 내 차지였다. 유난히 아이를 예뻐하셨던 슈퍼할아버지께서 "이놈 미남이네" 하시니 정색하고 "저 미남 아니에요, OOO이에요"해서 어르신들을 황당하게 했던 적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적응을 한 듯했지만 진짜 문제는 동생이 나오면서부터였다. 잘 다니던 어린이집을 다시 가지 않겠다고 드러누운 것이다. 반년 만에 다시 시작된 등원전쟁에 몸조리도 제대로 못한 에미는 아침마다 팬티바람으로 누워있는 아이를 들고 어린이집 교실까지 열심히 달리기를 했었다. 신생아와 낯가리는 아이를 오롯이 감당해야 했던 당시를 돌이켜보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었는지 나 스스로도 대단하다 싶을 때가 있다. 졸지에 웃픈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아이는 여전히 본인의 과거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데 지금의 자신과 달라도 너무 다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또 한번 웃게 된다.


이런 반전 과거를 지닌 우리집 2호님은 요즘 하루도 친구가 없이는 살지 못하는 어린이가 되어 온 동네 모르는 사람이 없는 아이로 성장했다. 이번 연휴에도 온 가족이 짚라인에 잔디썰매, 오프로드 카트까지 아이가 좋아하는 활동으로 가득 찬 신나는 여행을 다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 친구타령은 아빠가 출근한 다음날에도 계속되었다. 긴 연휴의 마지막 날은 집에서 밀린 숙제도 하고 컨디션 관리도 하고픈 게 엄마들 마음임을 알기에 우리 아이들도 조신하게 마지막 날을 보내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우린 다시 친구 찾아 삼만리, 아파트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녔다.


어린 시절 너무나 심했던 낯가림 때문에 아이를 너무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놀려서 그런 걸까, 집에서 채워지지 않는 욕구가 있어서 일까, 가끔은 혼자만 너무 친구에 집착하는 것 같아 걱정스러운 한편 대답없는 짝사랑에 빠진 모습에 안쓰럽기도 하다.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친구들이랑 뛰어 놀까 싶어서 오늘도 열심히 기회를 만들어주고 엄마는 놀이터 장승이 되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간이 가는 줄도, 체력이 바닥나는 줄도 모르고 뛰어 노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건강한 아이가 몸도 건강하게 자라는 거니 잘하는 일이다 싶다가도, "어릴 때 놀던 애들이 쭉 놀더라"는 얘기가 현실이 될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아직 기약은 없지만 앞으로도 한동안 나는 놀이터 망부석으로 살아야 할 것 같다. 아들의 지독한 짝사랑이 끝나는 그 날까지.

 

보리수(nasamo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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