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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상하이 86] 안녕 주정뱅이

[2020-08-10, 06:26:14] 상하이저널
권여선 창비 2016.05.16.

<안녕 주정뱅이>는 권여선의 다섯 번째 소설집으로 2016년 제47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제목 그대로, 애주가로 유명한 소설가 권여선의 작품답게 7편의 단편 모두 빼놓지 않고 ‘술’이 등장한다. 술을 조금씩 홀짝이는 정도에 머무르지 않고 한사코 ‘주정뱅이’에까지 이른 인물도 여럿 나온다. 망가진 삶, 처연한 삶, 희생만 강요 당하는 삶…. 다 우리 사는 세상 이웃들 이야기지만 강도가 조금 더 센 비극이라고 할까. 그런데 ‘산다는 건 참 끔찍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는 게 행복’이라는 결론까지 넘어오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방관자일 뿐인 독자는 소설 속 인물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벽을 사이에 두고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시늉만 할 뿐이다.  

‘의미’라는 말보다 ‘울림’이라는 말을 좋아한다는 권여선 작가, 커다란 감동의 물결이 아니라 살짝 흔들리는 정도, 그 정도는 왜 그런지 설명할 필요도 없어서라는 작가의 취향처럼 그의 이 소설집이 주는 감명이 바로 ‘울림’으로 표현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수록된 소설 7편 모두 훌륭하지만, 개인적인 울림이 컸던 작품은 <층>과 <이모>다. <층>은 서로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고 있던 두 남녀가 한순간 멀어지는 이야기다. 본심은 한없이 착하지만 언어 사용에 거칠었던 남자의 통화를 여자가 우연히 계단에서 엿듣게 되고…. 이 사소한 사건이 두 남녀를 운명적으로 갈라놓는다. “미세한 균열로도 생은 완전히 부서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탁월한 감각을 발휘해온 작가”라는 평가에 딱 어울리는 그런 작품이다. <이모>는 가족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강요 받았던 ‘이모’가 시한부 삶의 막바지에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된 이야기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삶에서 많은 것을 쳐내야 온전히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서글프면서도 그런 모습이 멋지게 보인 작품이다.   

소설집 전반에 관통하는 키워드인 ‘술’에 대해 잠깐 생각을 해봤다. 술은 독하다. 하지만 때론 아니 어쩌면 늘, 삶이 술보다 더 독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으신지? 독하디독한 삶을 묵묵히 견뎌내는 주변인의 이야기가 어찌 소설 속에만 있겠는가? 당장 내 삶은 복되고 여유롭더라도 시련은 곳곳에 잠복해서 수시로 우릴 놀라게 한다. 한 다리만 살짝 건너도 저기 저곳엔 삶이 힘들어서 아우성인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다른 이로부터의 공감과 치유와 위로…이런 것들에 우리가 의지하듯, 곁에 아무도 없는 이들은 ‘술벗’에 의지하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니, 생전에 술을 무척이나 즐기셨던 가까운 가족분이 떠오른다. 몸이 아무리 망가져도 술이 정말 맛있다고, 이 맛깔스러운 걸 어떻게 끊겠냐고 하시던 그의 삶을 되뇌어보는 애도의 시간도 잠깐 가졌다. 

<안녕 주정뱅이> 이후 더는 술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는 권여선 작가, 하지만 어떤 중요한 장면이 되면 그만큼이라도 술을 등장시켜야 하는 게 본인의 한계 같다는 작가, 그만큼 ‘술’이라는 존재의 매력과 위험 모두 묵직하여 ‘술’에 대한 애증은 늘 우릴 헛갈리고 방황하게 한다. 작품이 좀 더 독하고 섬뜩했으면 좋겠다는 작가, 소설을 낼 때마다 중점을 두는 부분이 바뀐다고 하는 작가의 다음 작품이 더욱 기대된다. 

최승희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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