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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상하이 99]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

[2020-11-12, 17:34:37] 상하이저널
정지우(평론가) | 우연의바다 | 2015.12.05

삶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 중 ‘여행’이란 단어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이 설렘이 아닐까 한다. 어디론가 떠나는 일은 설렘을 부른다. 그저 가까운 바닷가로 떠나보자 마음먹는 순간, 조금 전까지의 복잡했던 일상도 한동안은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은 힘을 주곤 한다. ‘여행’은 이렇게 떠올리기만 해도 일탈의 즐거움이 상상되며 설레는 말이 아니던가.

여행을 사랑하고, 여행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정리해 보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는 정지우 작가는, ‘세상은 바야흐로 여행의 시대가 되었다,’ 여행은 ‘일탈, 자유, 해방의 형식으로 가장 매혹적인 행위가 되었다’며 여행을 예찬한다. 그리고는 우리는 왜 여행을 하고, 여행을 하며 얻는 것은 무엇인가 묻는다. 그저 여행을 떠나려는 우리에게 그는, 여행에 관한 인문학적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여행은 무엇입니까?”

이 책은 그저 여행에 필요한 정보를 얻는 여행서가 아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돌아온 이후에 이르기까지, 여행의 동기, 배반의 의미, 가치 등 여행에 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성찰이 담겼다. 여행에 관한 작가의 오랜 고민과 그만의 답이 담긴 여행 인문학책이다.

크게 3부로 나눠, 1부에서는 여행은 무엇이고,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와 여행을 바라보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2부는 이 책의 핵심이자, 작가가 다녀온 여행을 통해 경험하고 고민한 ‘여행에 관한 모든 것’이다. 3부는 여행과 관련된 영화와 책 이야기를 풀어내며 여행과 청춘, 사랑, 치유, 죽음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나도 알 길 없는 복잡한 내 마음을 정확한 언어로 짚어내고 풀어내는 힘이 있는 것 같아 감탄하곤 한다. 이 책에서도 역시 젊지만 성찰이 깊고 적잖이 넓으며 시선이 풍부하고 신선하다고들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벌써 써낸 지 몇 해 지난 책이니 그간에 그의 글은 얼마나 더 풍부해졌을지 궁금하다.

책 여는 글에서 작가는 ‘소비가 최고의 쾌락으로 인정받고 있는 가운데 여행이 가장 값비싸면서도 가치 있는 소비로 자리매김’한 시대라며 예사롭지 않게 시작하지만, 곧 드러내놓고 배낭여행을 가장 여행다운 여행이라며 옹호하기도 한다. 처한 여건과 취향, 목적에 따라 다양한 여행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현실을 박차고 떠나온 여행이 패키지여행을 통해 쉴 새 없이 주요관광지를 구경하고 쇼핑을 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남은 것은 ‘사진’뿐인 소비적인 여행들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의 여행이 최고의 것이 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고민하고, 조율하고, 망설이되 너무 늦지 않게 출발해야 한다. … 현명한 여행은 틀림없이 삶의 가장 소중한 순간을 선물해주고 우리를 새로운 지평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한다.

단번의 여행으로 우리의 삶을 ‘새로운 지평으로’ 끌어올려 준다는 말이 아닐 터. 그가 말하고 싶은 많은 것들 중 하나는, ‘여행자적 시간관’과 ‘자기중심성’이다.

‘여행자는 즐거움과 고통, 흥분과 피로 사이를 오가면서도 끈질기게 그 여행을 이어나간다. 여행자는 여행해야 한다는 임무를 부여받은 존재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스로에게 그런 임무를 부여했다. 매일 힘겹게 일어나서 머무르고 싶어 하는 신체를 이끌고 밖으로 나서야 한다. 여행자는 저 창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햇빛의 유혹에, 새로운 풍경에 대한 예감에 이끌려 나가야만 한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매일을 시작하는 ‘지독할 정도의’ 하루하루의 삶에 대한 ‘성실성’을 체득하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나 자신과 내 삶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하게 된다고 한다. 대학생으로서의 시간, 사회 초년생으로서의 시간, 자녀 양육을 위한 시간, 은퇴 이후를 대비하는 시간, 노후를 누리는 시간 등이 모두에게 비슷한 선상에 그려져 나갈 때, 여행의 시간을 체득한 사람은 여행에서의 하루가 그러했듯 ‘오직 나 자신의 성실성’, 매일 도래하는 오늘에 대한 충실함으로 그 모든 의무감과 압박감을 이겨낼 거라 한다.

  생애 주기의 의무감에서 벗어나, 여행에서의 하루하루를 밀고 나가듯 자기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써나가는 삶이야말로 작가가 말하는 ‘여행자적 시간’을 사는 ‘자기중심성’이 아닌가 한다. 어쩌면 이것은 꼭 여행을 떠나서만이 아니라,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서 스스로 내 삶을 들여다보면 될 일이다. 그래도 우리가 여행을 또 떠나는 것은, ‘새로운 풍경들, 나를 둘러싼 세계와 자연을 다시 경험하고, 거리의 온갖 사람들의 삶을 체험하고 나서 돌아온 숙소에서의 달콤한 밤’ 때문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면, 삶을 살면서 내가 자주 부럽다고 느낀 이들은, 엄청난 부자도 아니고 매력적이고 예쁜 사람도 아닌, 여행하면서 피곤해서 널부러져 잠들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는 이들이었던 것 같다. 여행에서 하루를 충분히 즐기고 느끼는 피로감은 일상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피로감이잖은가!

다른 얘기지만, 여행만큼이나 책과 독서도 일방적으로 좋거나 나쁘거나 온전한 설렘과 평온감 같은 감정을 느끼는 대상이니, 여행과 독서는 서로 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독서광이자 여행중독자들이 많다. 피렌체 두모오 성당 돌계단에 앉아서도 책을, 트레킹을 하면서도 오디오북을, 안나푸르나에서도 전자책 뷰어를 봤다고 하는 이도 있다. 책을 읽으면 가고 싶은 곳이 늘어났고, 여행을 간 적이 있는 도시가 책에 나올 때면 머릿속에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지곤 하단다.
 
낯선 공간에 놓여 내가 몰랐던 세상의 질서와 부딪힐 때면, 나는 왜 그토록 여기에 오고 싶었던 걸까, 이곳은 내가 살던 여느 곳들과 별 다름없이 사람 살아가는 곳이련만 나는 여기서 뭘 보고 얻으려 했던 걸까 하면서도, 어느결에 내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에, 정겨운 그들의 삶의 냄새 앞에서 스르르 무너지곤 한다. 내 지난 여행들을 떠올려본다. 우리의 여행에서는 혹시 ‘사진만’ 남은 건 아닌지. 그리고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생각해본다. 여행이 진짜로 나에게 주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싶다.

박은희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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