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메뉴

상하이방은 상하이 최대의 한인 포털사이트입니다.

[허스토리 in 상하이] 촌스럽고 찌질하게 작별하기

[2021-02-09, 05:45:03] 상하이저널

보슬보슬 비 오는 토요일 오전, 향긋하고 달콤한 캐러멜 마끼아또를 만들고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 쓴 샌드위치를 포장했다. 그녀가 갑자기 상하이를 떠나 다른 도시로 이사 가게 됐다는 말을 들은 지 채 한 달도 안됐다. 늘 그렇듯 시간은 성큼 와 버렸고, 아쉬운 마음에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볼까 싶어 커피와 샌드위치를 들고 나섰다. 바로 옆 동에 그녀가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든든했다. 함께 길을 나서며 잠시나마 나누던 대화들도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쿨하고 산뜻하게 작별인사를 나누고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어젯밤 내내 울어 퉁퉁 부은 그녀의 눈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몸도 마음도 주저주저하며 머물다 보니 공항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 왔다. 결국 나는 그녀가 택시 타는 곳까지 배웅하며 또 한 번 눈물바람을 하고 말았다. 지켜보던 보안 아저씨가 안쓰러운 눈길을 보냈다. 
 
2주가 지난 후 또 한 번의 작별을 했다. 새해 들어 두 번째였다. 그녀와는 작년에 한 모임을 통해 알게 된 후 우리 아이들 학교 정보를 나누면서 대화할 기회가 많아졌다. 만나면 만날수록 대화의 주제는 아이 교육만이 아닌 우리들의 삶으로 확장됐다. 그녀는 에너지가 많았고, 새로운 것에 늘 흥미가 있었고, 엉뚱했다. 부끄러움이 앞서 나는 감히 시도도 못할 일들을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했고, 난 그녀의 대범함이 부러웠다. 게다가 그녀는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었고, “맞아요”, “그렇죠”라고 늘 공감해주었다.   

언젠가 식사 자리에서 나는 그녀 때문에 박장대소한 적이 있었다. 그녀가 긴 코트 안에 화려한 장식의 금색 레이스 드레스를 입고 나왔던 것이다. 머리도 드레스에 맞춰 우아하게 올렸고 화장도 특별히 신경 썼다. 전골에 소주를 마시기로 한 날, 그녀 자신의 드레스 코드였다.

“상하이에서 안 입어보면 언제 입어보겠어요. 그리고 언니들 재밌게 해 드리려고 제가 신경 좀 썼어요.”  그녀다운 대답이었다. 지금 안 해보면 언제 해보겠냐는 그 말은 나에게도 자극이 됐다. 그녀를 만날수록 내 마음도 젊어졌다. 
 
비타민 같던 그녀가 상하이를 떠나게 되기로 결정된 후부터 난 그녀를 볼 때마다 “가지 마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아쉬운 마음을 최대한 다 표현했다. 환송 자리도 몇 번이나 가졌다. 악수하며 깔끔하게 뒤돌아 서는 이별에는 자신이 없었다. ‘이 사람들도 여기에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지고 흐뭇해지던 순간들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상하이 살이 10년,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작별을 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헤어지는 것은 늘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조금 신경 더 쓰고 마음만 먹는다면 연락도 끊기지 않을 것이고, 영상통화를 통해 얼굴도 종종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난 오늘도 촌스럽게 눈물을 흘리고, 가지 말라며 찌질의 역사를 쓰고 또 쓴다. 
한동안은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그녀들을 그리워할 것이다. 상하이는 내가 잘 지키고 있을게, 혼자서 나지막이 중얼거릴 것이다. 再见, 나의 그녀들.

레몬버베나(littlepool@hanmail.net)

*<아줌마 이야기> 코너가 올해부터 <허스토리 in 상하이>로 바뀌었습니다. 다섯 명의 필진들이 상하이 살면서 느끼는 희로애락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 상하이방(http://www.shanghaiba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플러스광고

전체의견 수 0

댓글 등록 폼

비밀로 하기

등록
  • [허스토리 in 상하이] 기록 hot 2021.02.03
    초등 교사셨던 아버지는 자녀를 위해 특별히 가르치신 것은 없다. 그러나 초등학교 입학 후 매일 꼬박꼬박 일기를 쓰게 하셨는데 언제일지 모르지만 갑자기 검사를 하셨..
  • [아줌마이야기] 生态绿道 2021.01.20
    둘째 아이 학교 때문에 외국인이 거의 없는 이곳으로 이사 온 지 딱 6개월이 흘렀다. 이곳으로 이사 와서 가장 처음 한 일은 다종뎬핑(大众点评)으로 주변을 검색해..
  • [아줌마이야기] 지금, 여기서 행복하기 hot 2021.01.14
    두꺼운 커튼을 밀어 제치자 어제 밤 어둠에 몸을 숨기고 있던 숙소 건물의 기와지붕과 단아한 정원, 그리고 무엇보다 저 멀리 옥룡설산 뒤편 어디쯤일 봉우리들이 한눈..
  • 화동조선족주말학교 장학금수여식 열려 hot 2021.01.07
    한국인 기업가의 기부선행으로 30명 학생 장학금 수상신축년 새해를 맞아 지난 2일, ‘화동조선족주말학교 상하이 본교 제2기 장학금수여식’이 상하이민항홍차오윈빌딩에..
  • [아줌마이야기] 독서실 단상 2021.01.07
    고3 때 다급해진 마음으로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독서실을 한 달 끊은 적이 있었다. 야자를 끝낸 야심한 시각 남자여자실로 나눠진 그곳에 가서 늘 침을 흘리며 자..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1. 中 쓰촨 판다마을 강물 위 어린 판다..
  2. [김쌤 교육칼럼] 존 듀이와 민주주의..
  3. 中 외국인을 위한 중국 생활·결제·영..
  4. 상하이화동한인여성경제인회 '幸福之诺'..
  5. 상하이 수향마을, 어디까지 가봤니?
  6. 홍차오-푸동 ‘40분’ 공항철도가 기..
  7. [신선영의 ‘상하이 주재원’]일용할..
  8. 中 전자 상거래 기업은 ‘영상 콘텐츠..
  9. “입시의 첫걸음, 확실한 목표 설정”..
  10. 상하이한국문화원, ‘여성’ 주제로 음..

경제

  1. 中 전자 상거래 기업은 ‘영상 콘텐츠..
  2. 반석부동산, 서울 부동산 분석·투자..
  3. 中 3월 부동산 개발업체 자금조달 6..
  4. 中 자동차 시장 내수 부족 문제 ‘여..
  5. 中 우한대학, 샤오미 ‘레이쥔’ 과정..
  6. 中 1분기 해외 수출 신에너지차 3대..
  7. 무역협회, ‘2024 주중 한국기업..
  8. 中 1분기 GDP 성장률 5.3%…..
  9. 中 베이징, 상하이 10개 도시서 A..
  10. 샤오미, SU7 한 대 팔 때마다 1..

사회

  1. 中 쓰촨 판다마을 강물 위 어린 판다..
  2. 中 외국인을 위한 중국 생활·결제·영..
  3. 상하이화동한인여성경제인회 '幸福之诺'..
  4. 홍차오-푸동 ‘40분’ 공항철도가 기..
  5. “입시의 첫걸음, 확실한 목표 설정”..
  6. 상하이한국문화원, ‘여성’ 주제로 음..
  7. 독일 총리가 상하이 도착하자마자 달려..
  8. 독립운동가 부부이야기 <제시일기> 上..
  9. 반석부동산, 서울 부동산 분석·투자..
  10. 中 28개省 인구 현황 발표…광동 6..

문화

  1. 상하이화동한인여성경제인회 '幸福之诺'..
  2. 상하이한국문화원, ‘여성’ 주제로 음..
  3. 장선영 작가 두번째 여정 ‘Trace..

오피니언

  1. [김쌤 교육칼럼] 존 듀이와 민주주의..
  2. [허스토리 in 상하이] 또 한번의..
  3. [신선영의 ‘상하이 주재원’]일용할..
  4. [茶 칼럼] 봄의 시작, 동정벽라춘(..
  5. [금융칼럼] 중국银联 ‘유니온페이’..
  6. [델타 건강칼럼] OO줄이면 나타나는..
  7. [무역협회] 美의 차별에 맞서, '법..
  8. [산행일지] 봄날의 ‘서호’를 거닐고..

프리미엄광고

ad

플러스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