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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in 상하이] 봄을 걷다

[2021-05-13, 19:53:11] 상하이저널

봄, 저 따스함, 볕. 아직 썰렁한 내 거실로 정중히 청하고 싶은 꿈을 꾼다. 현실은 아직 치우지 못한 전기장판과 난로, 그리고 두툼한 울 조끼. 봄은 낮 가림이 심하다. 까다롭다. 그래도 마냥 그리운 손님이다.  
테니스 코트에서 누군가 라켓으로 힘껏 공을 치는 규칙적인 소리가 들린다. 비가 그쳤구나! 나갈 준비를 한다. 작은 우산 하나를 챙겼다가 도로 놓고 방수 점퍼를 입고 나선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휴일 아침, 공원은 필시 인적이 드물 것이다. 그 곳의 나무, 풀, 비 그친 틈을 타 서둘러 제 볼 일을 보는 작은 새, 그리고 비에 젖어 더 선명해진 붉은 색 굽이 길을 호젓하게 차지할 좋은 기회다.

겨울 추위를 견디고 잎도 없이 마른 가지에 꽃을 피워낸 매화나무를 보고는 가슴이 저렸다. 매화 뒤를 이어 목련, 왕벚꽃이 화사하게 폈다가 졌다. 짧은 생애, 슬퍼할 시간도 주지 않고 봄 비 한 번에 후드득 져버린 상실의 자리에 위로라도 하듯 겹벚꽃이 꽤 오랫동안 폈다. 자기들끼리 순서라도 정한 걸까, 누가 알려 주지 않아도 꽃들은 신기하게 해마다 제 순서대로 피었다가 진다.

이제 봄기운은 키 큰 나무로부터 아래쪽 키 작은 나무에까지 왔나 보다. 철쭉과 찔레꽃이 피고 장미가 수줍은 봉우리를 하나 둘 내미나 싶더니 수국이 무럭무럭 자랐다. 머지않아 탐스런 수국 꽃 송이를 볼 생각에 잠시 마음이 설렌다.

향장나무의 봄 맞이는 꽤나 유난스럽다. 대기가 자꾸 따스해지는 기운을 못 참겠다는 듯이 휙휙 바람이라도 불어내려 치면 기다렸다는 듯이 경망스레 몸부림 친다. 묵은 이파리들을 어지간히도 털어내더니 눈부신 연 초록 새 옷을 차려 입었다. 길 양편, 이쪽 나무와 저쪽 나무의 가지가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곧 닿을 듯 가까워졌다. 마치 여기까지 애써 잘 왔다며 서로 격려하고 포옹하는 듯 하다. 앞으로 저 포옹은 더 끈끈해 질것이다. 이런 길이 나는 좋다.

혼자 걷기는 그 시간만큼의 은둔이다 라는 어느 작가의 말이 기억난다. 누군가는 매일 출퇴근 20분씩을 꼭 걸어 다닌다고 했다. 그 시간이 바로 자신에게는 은둔 이었다며 공감했다. 그렇게 많은 일과 부침에도 지금까지 잘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은둔의 시간 덕분 이라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은둔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면 걷는 것이야 말로 완벽한 형식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누구의 도움도 무엇의 지지도 없이 오롯이 나의 뼈와 근육의 힘으로만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감각적이고 신비로운 경험이다. 혹은, 기적이다. 걷다 보면 자연스레 조그만 들풀, 꽃, 새, 사람을 자세히 보게 된다. 바람, 햇볕, 꽃 향기,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혹 생각의 무게가 버겁다고 느껴지는 봄 날에는 툭툭 털고 나가 일단 걸어 볼 일이다. 전기 난로와 두터운 조끼가 서글퍼진다면 더 더욱 그럴 일이다. 생각의 군더더기는 덜어지고, 몸과 마음은 봄 기운의 위안으로 충만해져 훨씬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돌아오는 자기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이디(everydaynew@hanmail.net)

<아줌마 이야기> 코너가 올해부터 <허스토리 in 상하이>로 바뀌었습니다. 다섯 명의 필진들이 상하이 살면서 느끼는 희로애락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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