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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in 상하이] “알고 있어, 엄마도 나가 놀고 싶은 나이지”

[2022-09-02, 17:57:20] 상하이저널
우리 어머니는 매우 약속이 많다.

문장 완성 검사에서 우리 아이가 엄마에 대해 완성한 문장이다. 여름방학 동안 한국을 방문했던 아이는 심리상담을 받아보고 싶다고 했다. 아이는 학기 중에 받은 스트레스도 많았고, 미래에 대한 고민도 컸다. 부모가 아닌 전문가와 비교적 전문적인 검사를 통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 했다. 그런데, 엄마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이 ‘약속이 많다’라니. 당황스러웠다. 아빠에 대해 완성한 문장과 비교가 되니, 퍽 서운했다. 괘씸한 마음도 들었다. 문장으로만 보면 가족들에 대한 사랑과 희생은 아빠 몫이고, 나는 놀러 다니느라 바쁜 ‘날라리’ 엄마인 것만 같았다(라고 그 순간에는 살짝 이성을 잃고 과잉 해석을 했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상담실을 나와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가 약속이 많아? 한국에 오니 엄마도 일도 봐야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 그렇지. 너는 이모랑 시간 보내는 게 더 재밌잖아?”

“엄마도 같이 가면 더 좋은 거지….”

아이는 내 동생네 집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인형같이 귀여운 강아지가 두 마리나 있고, 그 강아지 못지않게 귀엽고 짓궂은 조카들도 두 명이나 있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 취향을 저격하는 요즘 언니 같은 이모가 있기 때문이다. 이모와 같이 인스타에서 유명한 카페에 가고, 쇼핑하면서 즐거운 줄만 알았다.

상하이에서도 한국에서도 외출하는 나에게 “안녕히 다녀오세요”라고 쿨하게 인사를 해서 그런 마음을 몰랐다. 엄마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마음에 속마음을 내비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대화가 시작되니 아이는 솔직하게 말했다. 엄마 일이 바쁘다고 자기한테는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아 서운했다고 했다. 이모와 재밌는 것은 재밌는 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필요한 것이다. 열여섯 살은 아직 엄마와 같이하고 싶은 것도 있고, 엄마가 옆에 있는 것이 좋은 나이인가 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였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왔는데 가끔 엄마가 안 계시는 날에는 엄마를 기다렸다. 숙제하다가 한 번씩 베란다에 나가 엄마 모습이 보이나 내다 보기도 했다. 왜 그렇게 엄마를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집에 계신다고 나와 같이 노는 것도 아니고, 나누는 대화라 봐야 아주 일상적인 것들이었을 텐데. 집 안을 왔다 갔다 하시는 엄마의 발소리가 안 들리고, 엄마의 인기척이 없는 것이 그리 적막할 수가 없었다. 그때는 늘 집에 계시던 엄마가 안 계시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엄마도 밖에서 볼 일이 있고, 친구도 만날 수 있고, 가끔은 혼자 바람이라도 쐬고 싶으시다는 것을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엄마가 집에 돌아오시면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어디 갔다 왔어? 응? 응?”하며 원망과 어리광의 표정을 지으며 엄마 꽁무니를 따라다녔다. 얼마나 엄마를 기다렸는지, 그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같은 말은 쑥스러워 하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우리 아이도 이런 마음이었을까(역시 나만의 오버센스일지도 모르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책으로 가득 찬 레트로 감성의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아이가 “엄마가 좋아할 것 같은 카페에요”라고 했다고 동생이 전해준 말도 떠올랐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은 이런저런 약속이 많기는 했다.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는 아이들 위주로 일정을 짜면서 데리고 다니느라 바빴다면, 이번에는 내 위주로 보낸 시간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아이가 다 컸다고 생각했고, 혼자 알아서 잘하는 아이라 특별히 신경을 안 쓰기도 했다. 아직도 엄마와 놀고 싶어 하는 마음이 귀엽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상담을 계기로 잠시 나눈 대화에 우리는 또 서로의 마음을 알았다. 그 날 저녁, 아이는 나에게 위챗으로 이미지 파일을 하나 보냈다. 거기엔 이런 문장이 쓰여있었다.

“알고 있어, 엄마도 나가 놀고 싶은 나이지.” 

레몬 버베나(littlepo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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