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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판 아나스타샤 "내가 청제국의 공주다"

[2014-10-21, 09:34:28] 상하이저널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20년 유럽의 사교계는 한 여성의 등장으로 발칵 뒤집힙니다. 볼셰비키 혁명 직후 총살당한 줄 알았던,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막내딸인 아나스타샤가 돌연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안나 앤더슨이라는 이름의 여성은 자신이 아나스타샤며 총살 당시 극적으로 죽음을 면한 뒤 유럽으로 몰래 빼돌려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사건 당시 충격으로 기억을 잃고 지내다 최근 자신의 신분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유럽에 있던 로마노프 황가의 막대한 재산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는 소송을 냈습니다.
 
 
이 여성이 진짜 아나스타샤인가는 미스터리가 됐습니다. 어린 아나스타샤를 직접 본 적이 있던 러시아 망명 귀족들 사이에서도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주장과 말도 안 되는 사기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나스타샤의 귀와 다리에 있던 남다른 특징이 이 여성에게도 있었습니다. 또 황가의 일원이 아니면 알 수 없는 황가내의 은밀한 사실들을 상당히 많이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황가의 가족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만한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꽤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정작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했습니다. 기억 상실의 후유증이라고 안나는 주장했지만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안나는 로마노프 황가의 재산을 되찾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안나가 아나스나샤임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며 법원이 각하를 결정했습니다. 그래도 안나는 절반의 성공을 거뒀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녀가 아나스타샤임을 믿고 후원해줬습니다. 이들의 도움으로 안나는 미국으로 건너가 결혼까지 하고 나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1984년 죽을 때까지 자신이 아나스타샤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안나의 이런 사연은 당대 최고의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과 율 부린너가 주연으로 나서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만화 영화로도, 뮤지컬로도 만들어졌습니다. 로마노프 황가의 비극적 최후와 막내딸 아나스타샤의 극적 운명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20년 전 또 다른 반전이 찾아왔습니다. 1991년 아나스타샤의 남동생인 알렉세이 황태자와 아나스타샤이거나 자매일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들이 러시아에서 발견됐습니다. DNA 감정 결과 이 유골은 로마노프 왕조의 일원임이 확인됐습니다. 이미 숨진 안나가 아나스타샤인지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보관 중이던 그녀의 치아와 머리카락을 이용한 DNA 감정이 이뤄졌습니다.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영국 왕실로 시집을 갔던 아나스타샤 어머니의 언니, 즉 아나스타샤 이모의 DNA까지 함께 비교했습니다. 결과는 러시아에서 발견된 유골과 아나스타샤의 이모의 DNA는 일치했지만 안나의 DNA는 어느 쪽과도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안나의 아나스타샤 행세는 사기였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중국의 마지막 황가, 청제국의 공주가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1월 67세 왕모씨는 한 친구의 소개로 우연히 산시성 시안에서 열린 투자설명회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왕복 비행기 표는 물론 행사 기간 숙식비까지 모두 주최 측이 내준다는 말에 놀러간다는 가벼운 기분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참석한 행사는 으리으리했습니다. 4성급의 화려한 호텔에서 꽤 사치스런 대접을 받았습니다. 매일 같이 사자춤 등 호화로운 공연이 벌어졌습니다. 게다가 참석한 인사들이 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회사의 수뇌들이었습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이 행사를 주관한 주인공이라며 청 황가의 공주를 소개 받았습니다. 이 여성은 자신이 청 황실 야신지오로 일가의 셋째 공주, 창핑 공주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동결된 청 황실의 재산을 되찾는 사업에 투자하라고 권유했습니다.

창핑 공주의 설명은 이러했습니다. "청이 무너지면서 청 황실은 보관중인 막대한 금괴와 각종 금 장신구, 달러 예금 등을 비밀리에 쓰촨과 구이저우 등 8개 지역 금고에 분산 보관했습니다. 신중국이 성립되면서 이 재산들은 모두 사용하지 못하도록 동결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확실한 청 황실의 재산이기 때문에 상속자인 본인이 8개 금고의 열쇠를 모두 보관하고 있습니다. 재산상 가치는 대략 1천7백50억 위안(우리 돈 30조 원)에 달합니다. 제 혼자 힘으로는 중국 정부를 설득해 이 재산을 돌려받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중국 고위 수뇌부에 로비를 하고 압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재력가 분들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맺으려 합니다."

공주는 이 과업을 이루기 위해 친분이 있는 사업가들과 일종의 투자회사를 세웠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정부에 대한 설득과 수뇌부 로비에 들어갈 많은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를 받고 있으며 동결된 청 황실의 재산을 되찾으면 3배의 수익을 보장하겠다고 설득했습니다.

행사 참가자들은 처음에는 회의적 반응을 보였습니다. 너무 황당한 얘기라는 평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주가 창고에서 일부 빼온 보관품이라며 물건들을 보여주는 순간 분위기가 술렁였습니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금붙이에서부터 각종 옥 장식품, 무엇보다 어떤 죄를 지어도 사형을 면할 수 있다고 황제가 인증한 금패까지, 참가자들에게 창핑 공주는 진짜 공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공주의 회사는 왕씨를 비롯해 몇몇 참가자들에게 보물 보관 창고를 직접 보러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왕씨는 시안 근교와 쓰촨, 구이저우 등의 창고를 현지 시찰했습니다. 비행기 표 등 모든 경비는 회사 측이 부담했습니다. 해당 창고는 모두 군사 관할 구역에 위치했습니다. 군인들이 철통 같이 경비를 서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먼발치에서 외관만 봐야 했습니다. 공주는 자신은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양모라는 군 예복을 입은 사람이 공주를 모시고 들어갔다 나오더니 금괴와 금말발굽, 금병 등을 가지고 나와 보여줬습니다. 왕씨 등은 내부를 보지 못했지만 진짜 보물 창고로 믿게 됐습니다. 다만 공주는 "현재 쓰는 것은 금지됐다"며 그런 보물을 실제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왕씨는 창핑 공주의 말을 완전히 신뢰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사업으로 모은 돈과 집을 처분해 20만 위안, 3천4백여만 원을 투자했습니다. 이후 공주측은 '베이징 양회(전국인민대회의와 정치협상회의)에 참가해 중국 수뇌들과 만나기로 했다', '회사 운영자금이 필요하다'며 10, 20만 위안씩 계속 투자를 유도했습니다. 왕씨는 자신의 재산뿐 아니라 친척 돈까지 빌려 5억 원 넘게 투자했습니다. 공주의 회사는 왕씨가 대투자자가 됐다면 재무 총책임자라는 직책까지 줬습니다. 공주의 회사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항상 바쁘고 떠들썩했지만 재산 동결이 해제될 것이라는 소식은 전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왕씨는 점점 불안해졌습니다. 확신도, 기약도 없는 사업에 자신은 물론 친척 재산까지 끌어들였기 때문입니다. 왕씨는 공주 측에 투자금의 일부라도 돌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의외로 공주측은 선선히 그러마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황실의 달러 예금 가운데 일부를 찾았다며 50만 달러를 내줬습니다. 왕씨는 감격했습니다. 돈을 빌린 친척을 불러 자랑을 하며 달러를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해당 달러를 꼼꼼히 뜯어보던 친척은 얼굴을 굳힌 채 왕씨를 힐난했습니다. "돈 뭉치의 첫장만 실제 달러이고 나머지는 모두 조악한 위조지폐잖아."

왕씨는 창핑 공주를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자신이 당한 사기를 설명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힘을 동원했습니다. 일가친척 6명을 불러 공주를 회사에 감금했습니다. 그리고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따졌습니다. 사건은 어이 없이 전개됐습니다. 어머니가 회사에 감금된 채 돌아오지 못하자 13살 된 공주의 양녀가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경찰은 양녀와 함께 회사에 찾아가 공주를 구출했습니다. 그리고 납치와 강제 감금 혐의로 왕씨 일행을 체포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왕씨 일행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공주측이 벌인 희대의 사기 행각 역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는 이러했습니다.

자칭 창핑 공주는 올해 47세의 만주족인 왕모씨였습니다. 2012년 말쯤 왕씨는 양모, 쟝모씨를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자신이 옛 청실 황가의 어린 공주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왕씨의 농담은 사기 행각의 단초가 됐습니다. 세 사람은 사기를 도울 5명을 더 구한 뒤 투자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수법의 사기를 벌였습니다.

사기 피해자 왕씨 등 투자자들의 투자금은 사기 규모를 확대하고 더 많은 투자자를 끌어 모으는데 쓰였습니다. 공주가 보여줄 보물로 금과 옥 장신구를 사 모았습니다. 양씨는 장교증을 위조하고 군용 차량을 구해 군인으로 신분을 위장했습니다.

이렇게 전국 각지의 투자자들로부터 약 10억원을 편취했습니다. 경찰은 이들 일당 가운데 6명을 구속하고 1명의 뒤를 쫓고 있습니다.

가짜 공주 일당이 나름 통 크게 사기 행각을 꾸몄지만 그래도 어이없습니다. 청실 황가의 재산이 아직까지 보관돼있다는 황당한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중국 언론의 분석이 또한 재미있습니다.

중국 무협 소설의 태두 진융의 마지막 소설 '녹정기'에는 청나라의 보물이 잔뜩 보관돼있는 비밀창고가 주요 무대로 등장합니다. 중국에서 워낙 유명한 이 소설로 인해 사람들의 뇌리에 청의 보물 창고가 실제 있다는 인식이 깊히 박혔다는 설명입니다. 그래서 얼핏 황당해 보이는 청나라 보물찾기 사기에 쉽게 빠져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동양인 중국 뿐 아니라 서양인 유럽에서도 가짜 공주 사건이 있었다는 점은 또 다른 설명도 가능하게 합니다. 역사 시대 이후 대부분의 기간은 전제 군주제가 존재했습니다. 워낙 역사적 뿌리가 깊다보니 아직 세계 곳곳에는 군주제, 즉 왕실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황제, 왕실에 대한 관념이 여전히 잔존하고 이에 대한 환상이 여전히 있나 봅니다. 특히 공주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한 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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