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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한 박자 쉬고

[2015-01-19, 09:52:05] 상하이저널

악보를 보면 16분 음표, 8분 음표, 4분 음표, 2분 음표, 온음표와 함께 이 음표들의 길이만큼 쉼표가 등장한다. 작곡가들은 이 기본들을 가지고 아름다운 노래들을 만들어 낸다.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이라는 노래에도 음표들과 다양한 쉼표들이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어갈 텐데…. 아이들을 키우며 엄마의 마음 속에 스며드는 쉼표 없는 음표만 재촉하고픈 다급함을 느낀다. 요즘 세상이 그렇다는 핑계를 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핑계다.


중학 과정에 들어간 지 1년 반이 되어가는 둘째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한 달 전부터 들썩들썩했다. 작년에는 안그러더니 어느덧 중학교에 적응해서 여유가 생긴건지, 크리스마스 방학을 틈탄건지 졸업한 학교에 가고 싶다는 거다. 둘째가 다니던 중국 학교는 특별활동시간에 비즈 공예가 있던 학교다. 4학년 때 중국 학교로 전학 가던 그 때가 떠오른다. 어문, 수학 선생님들이 중간에 들어 온 한국의 조그만 여자 아이를 붙들고 점심시간마다, 특별활동 시간마다 보충 수업을 해주셨다. 다른 아이들은 놀고 있을 때, 놀지 못하고 쉬지도 못하고 보충을 하던 둘째의 마음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뿐이랴 새로 전학 온 한국 아이 때문에 쉬지도 못한 두 분 선생님들에 대한 미안함, 고마움이 늘 마음 한 켠에 있었다.


한 학기가 지나고 두번째 학기부터 참여케 된 특별 활동에서 이 아이는 그렇게 하고 싶었던 비즈 공예를 했다. 가르치시는 선생님 솜씨가 보통이 아니셨다. 워낙 손재주가 있고 이런 걸 좋아하는 아이라 전학 후의 스트레스를 버텨 줄 버팀목이 되는 걸 보았다. 세 아이를 키우며 유독 공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둘째다 보니 숙제 많고 힘든 중국학교를 보내며 걱정이 많았었다. 우리 둘째를 통해 나는 인생의 쉼표를 유독 많이 배웠다.


아무리 아이들을 위해 어느 학원이 좋을까? 고민을 하고, 지금은 피아노를 배우는 게 좋을까? 권유해 봐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엄마의 계획대로 아이들이 잘 따라가 주는 집 보면 그 엄마도 참 대단해 보이고, 아이도 참 대단해 보이는 게 요즘의 교육 풍속이다. 큰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 걸 진작 내려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불쑥 불쑥 고개 드는 내려 놓은 마음들 때문에 힘든 걸 보면 다른 엄마들도 늘 고민하는 문제려니 싶다.


국제학교와 달리 3~4일에 불과한 크리스마스 방학이고 바로 시험이 있는데 이 아이는 벌써 졸업한 선생님들 만날 계획에 분주해 보였다. 여러 학교로 중학을 진학한 친구들 연락처를 졸업 앨범에서 찾더니 위쳇, 친구의 친구를 호출해 가며 제 반 친구들과 연락을 취해 함께 학교에 갈 친구들을 수소문한다. 김치를 좋아하는 비즈 공예 장(张)라오스와 행정실 위(余许)라오스를 위해서는 김치를, 몸매가 안받쳐주지만 늘 외모에 관심 많은 수학 천(陈)라오스를 위해서는 맛사지팩을, 담임이었던 어문 루(鲁)라오스를 위해서는 유자차를, 심지어 교장선생님 드릴 펜까지 집안 재고 조사를 다해 챙긴다. 뿐인가 학교에서 하루 종일 있을 요량이란다.

 

이왕 간 김에 수업하시는 선생님들 방해 안 되게 비즈공예 장라오스 옆에서 다른 노하우 전수 받고 작품 여러 개 만들어 온다는 목표까지 세운 듯 하다. 타오바오에서 관련 비즈들을 주문해 이것도 한아름 챙겨간다. 일주일 전부터 단지 앞에 오는 이전 학교 스쿨버스 시간표는 물론이요, 현재 다니고 있는 동생들 통해 스쿨버스 보모에게 자기가 그날 아침 7시 15분에 타고 학교 갈 것까지 의사소통을 해 놓는 것을 보았다. 아이의 열심과 흥분이 기특해 여분으로 혹 더 계실 선생님들을 위해 한국 맛사지팩을 포장해 챙겨 주었다. 마침 대만학교 다니는 한 친구가 깜짝 방문해 함께 할 수 있다 하여 안심도 되고….


6시부터 일찌감치 씻고 도시락을 챙기고, 선물을 가방에 한 가득, 손에 한 가득 들고 가는 모습을 보니 기특하고 또 기특하다. 인생에서 이러한 한 박자 쉼이 얼마나 사람을 달뜨게 하고 생기있게 하는지 새삼 둘째의 모습을 보며 느꼈다. 졸업생들의 방문이 선생님들을 기쁘다 못해 흥분으로 몰아 넣은 모양이다. 12월 24일이라 학교에서도 오전 중요 과목들만 수업하고 오후엔 크리스마스 파티 비슷하게 오락 시간이었는데 오랜만에 맞춤 선물을 한가득 들고 찾아 온 중학생 제자들 때문에 즐거움 가득이었던 듯 하다. 둘째가 다녀 오고 2주가 다 되어 가도록 우리 집엔 매일 선생님들이 보내신 답례 선물로 오후 5시면 초인종이 울려 댔다.


비즈 공예를 하려던 둘째의 계획은 오후의 파티에 참석하고 즉석 사회자가 되어 후배들과 함께 하느라 무산 되었지만 그날 오후 둘째의 방문은 모두에게 커다란 쉼이 되었던 듯 하다. 영어 선생님은 아이 낳고 복귀하셨고, 여전히 원어민 영어선생님은 전직 요리사셨던 실력을 발휘하여 맛있는 크리스마스 요리를 내 놓으셨고, 수학 선생님이 암치료를 받으시고 이제 복귀하셔서 머리카락이 자라고 있고 힘이 없으셨다는 소식까지.


둘째는 유독 여러 모양으로 자기 인생에 이런 쉼표의 시간을 많이 갖는다. 큰 아이나 막내도 지칠 줄 모르고 하나에 몰두하는 아이들이 아닌지라 자기들 나름대로 수많은 음표와 쉼표를 섞어가며 자기네 인생을 엮어가고 있다. 대입을 앞둔 큰아이는 엄마 마음은 빠르게 곡이 전개되기를 원하지만 어찌 그리 많은 쉼표를 갖고 여유를 부리는지. 그 쉼표가 자신 뿐 아니라 주변에 주는 기쁨을 보았음에도 참 엄마 마음이라는 게 그렇다. 오늘 둘째 통해 한 박자 쉬는 법을 배운다.

 

▷Renny(rennyh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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