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메뉴

상하이방은 상하이 최대의 한인 포털사이트입니다.

[허스토리 in 상하이] 작가의 정원

[2021-12-23, 17:09:31] 상하이저널
“작가의 정원을 전시장에서 걸어보지 않을라우?”
반가운 M언니가 소식을 전해왔다. 나에게는 생소한 알렉스 카츠Alex Katz라는 화가의 한 전시회 소개 기사 제목을 익살스럽게 흉내 낸 언니의 제안이 따뜻함으로 다가왔다. 앞 뒤 안 보고 코로나 시국을 뚫고 날아왔던 한국에서의 생활이 조금 무료 해지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일단 언니가 걸어준 링크의 기사를 훑어봤다. 94세 뉴욕 미술계의 노 작가이며 남성 화가 그리고 심지어 “꽃Flowers”을 주제로 한 전시회라니. 며칠 지나 곧 눈이라도 내릴 듯 꾸물거리는 어느 오후, 여전히 특이한 이 조합에 대한 궁금증을 품은 채 우리는 전시장으로 연결된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아담한 전시장, 밝은 조명, 그 아래 주황, 연두, 노랑색 꽃 그림들과 마주한 순간 나는 이내 쌀쌀하고 꿉꿉한 바깥 세상의 공기 따위와는 깨끗이 이별해 버렸다. 

전시장에 비치된 자료에 따르면 ‘1950년대에 알렉스 카츠가 활동을 시작할 무렵의 뉴욕 미술계는 잭슨 폴록Jackson Pollock과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으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가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파고 속에서 카츠는 미국의 현대적인 삶을 담백한 필치로 담아내며 자신만의 고유한 화풍을 발전시켰다. 카츠는 영화와 빌보드 광고, 음악, 시 그리고 가까운 친구나 가족에게서 영감을 얻었으며, 당시의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며 강렬한 색조와 편편한 화면이 돋보이는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카츠의 회화는 여러모로 앤디 워홀Andy Warhol과 같은 팝 아티스트와의 형식적, 개념적 관련성을 떠오르게 하지만, 여전히 그의 작품은 회화적이고 현실을 관찰하는 데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존의 꽃 작품들과는 다른 이 새로운 꽃 시리즈는 펜데믹이 시작된 후에 그려진 것인데, 작가는 이 시리즈를 통해 펜데믹에 지친 세상을 어느 정도 격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자연의 빛을 맘껏 받아들인 꽃에 밝은 색상을 부여하는 방식은 인상주의 작가들의 작업과 닮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접한 카츠의 작품은 표현을 최대한 절제하면서 꽃의 주요 특징만을 잡아내고 있다. 꽃의 밝고 선명한 색감은 유화 물감으로 온전히 묘사하기 쉽지 않은데, 이는 물감을 섞는 과정에서 선명했던 안료가 기름에 의해 탁해지기 때문이다. 작가는 색상의 명도를 높이기 위해 보색을 사용해 신중하게 색의 균형을 맞춘다고 한다. 그는 오랜 경험으로 각 색상의 역할과 조합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 작품들이 보여주는 최대한 절제되고 단순화한 꽃의 ‘형상과 부피 자체의 묘사’는 어떻게 처리했을까? 작가는 꽃의 음영을 더욱 강하게 부각시키고, 먼저 칠한 물감이 마르기 전에 다음 획을 더하는 ‘웻 온 웻(wet on wet) 기법을 사용하여 신속하게 작업한다고 한다. 이는 작가의 전매특허 같은 기법인데 작품에 ‘즉각성’이라는 요소를 더해 주기도 한다. 

  

  

 

밝고 화사한 색상의 꽃 그림들에 빠져 들어 걷고 있던 나의 시선이 이번엔 전시장 중앙에 걸려있는 초상화에 강하게 이끌린다. <밀짚모자 3(Straw Hat 3, 2021)>을 비롯한 몇 점의 초상화 또한 밀짚모자를 쓰고 정원을 산책 중인 듯한 인물을 카메라 렌즈를 통해 아주 가깝게 클로즈업한 것 같이 보인다. 이러한 구성 기법은 마치 눈 앞에 실존하는 대상과 마주하고 있는 듯, 섬세하며 특별한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이중(二重)의 초상화로 구성된 작품 속 인물은 윙크 또는 옅은 미소를 짓고 있다. 현실적이지만 완전히 현실적이기만 하지 않은, 매우 간결한 터치로 완성된 초상화 속 여인은 오히려 강렬함과 당당함으로 나를 압도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운은 길었다. 간결하고 화사한 색감의 작품이 주는 전환과 감동이 작가의 마음과 함께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말은 없었지만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우리는 뭔지 모를 충만함과 위안을 느끼며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하이디(everydaynew@hanmail.net)    

  

 


ⓒ 상하이방(http://www.shanghaiba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체의견 수 0

댓글 등록 폼

비밀로 하기

등록
  • 올해 가기 전 통신사·쇼핑몰·은행 마일리지 소비 전.. hot 2021.12.24
    올해 가기 전 통신사 쇼핑몰 은행의 마일리지 소비 전략! 한 해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각종 마일리지(포인트)가 있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사용하자. 현명한 마일리지..
  • 화동조선족주말학교개교 10주년 기념식 개최 2021.12.24
    화동조선족주말학교설립 10주년 기념식이 지난 19일 송강구 템즈타운(泰吾士小镇)에서 성공적으로 열렸다.상하이탄에서 활약하는 조선족 단체 다수 대표 인물들, 여러...
  • 실화 바탕의 한국 범죄영화 4편 2021.12.24
    이 ‘영화’가 ‘실화’였다니? 범죄를 소재로 한 영화들 중에서 스토리가 픽션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안되게 사실감 있게 그려진 작품들을 많이 보게 된다. 흥..
  • 바퀴벌레가 나쁘지만은 않은 이유 2021.12.23
    전 세계 약 600만에서 1000만으로 추정하는 곤충들이 있다. 이 중 우리 생활에 항상 가까이 있는 곤충 ‘바퀴벌레’, 생물학자와 기계공학자 등 많은 전문가들은..
  • 커피의 계절, 다양한 커피 추출 방법 2021.12.23
    커피에는 정말 많은 종류가 있다. 가장 기본적인 에스프레소부터 드립커피까지 정말 다양한 추출 방법으로 가지각색의 커피를 추출할 수 있다. 가장 대중적인 커피 추출..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1. 中 항저우, 주택 구매 제한 ‘전면..
  2. 上海 올해 안에 카페 1만 개 돌파하..
  3. 중국-멕시코 직항 개통…中 최장 길이..
  4. 월급 800만 원? 중국에서 핫한 이..
  5. 中 에스컬레이터 ‘한 줄서기’ 강조..
  6. ‘파리 올림픽’ 예선전 上海서 열린다
  7.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 中 언론 “한국..
  8. 中 시안도 주택 구매 제한 전면 폐지..
  9. 中 맥도날드 식자재 ‘택갈이’ 사실…..
  10. 中 1분기 즉석 복권 판매 80%↑..

경제

  1. 中 항저우, 주택 구매 제한 ‘전면..
  2. 월급 800만 원? 중국에서 핫한 이..
  3. 中 시안도 주택 구매 제한 전면 폐지..
  4. 中 1분기 즉석 복권 판매 80%↑..
  5. 中 4월 수출액 전년比 1.5% 증가..
  6. 테슬라, 상하이 메가팩 전용 공장 승..
  7. 中 항저우·난징 주택 거래 급증…부동..
  8. 中 1분기 입국자 모바일 결제액 ‘1..
  9. 중국판 다이소 미니소, 올해 해외 6..
  10. 美, 중국산 전기차·배터리·반도체 등..

사회

  1. 上海 올해 안에 카페 1만 개 돌파하..
  2. 중국-멕시코 직항 개통…中 최장 길이..
  3. 中 에스컬레이터 ‘한 줄서기’ 강조..
  4.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 中 언론 “한국..
  5. 中 맥도날드 식자재 ‘택갈이’ 사실…..
  6. [3회 청미탐] 하버드 출신, 상하이..
  7. ‘Next Level’이라는 江浙沪..
  8. 中 외국인 크루즈 단체 관광객에 15..
  9. 해외 크루즈 관광객 中 15일 무비자..
  10. 미국서 확산 중인 코로나19 변종 ‘..

문화

  1. ‘파리 올림픽’ 예선전 上海서 열린다
  2. [책읽는 상하이 239] 사려 깊은..
  3. 상하이, 세계박물관의 날 맞아 135..
  4. [책읽는 상하이 240] 완벽한 공부..

오피니언

  1. [Dr.SP 칼럼] 심한 일교차 때..
  2. [허스토리 in 상하이] 추억을 꺼내..
  3. [안나의 상하이 이야기 11] 상하이..
  4. [중국 간식 기행 ④] 마(麻)로 만..
  5. [Jiahui 건강칼럼] 혈액이 끈적..
  6. [허스토리 in 상하이] 상하이를 떠..
  7. [무역협회] Z세대, 기존 소비 패턴..

프리미엄광고

ad

플러스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