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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상하이 206] 유럽 도시 기행 1

[2023-08-26, 07:40:40] 상하이저널
유시민 | 생각의길 | 2019년 7월
유시민 | 생각의길 | 2019년 7월
<유럽 도시 기행1>은 각기 다른 시대에 유럽의 문화 수도 역할을 했던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 이렇게 네 도시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테네 : ‘멋있게 나이 들지 못한 미소년’

고대 아테네는 대부분 B.C.5세기에 만들어졌으며, 페르시아전쟁에서 이기고 ‘델로스 동맹’을 이끌었던 아테네 시민들은 동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고 경제적 번영을 누렸던 그때 대리석으로 거대한 집을 지어 자신들의 신을 모셨다. 파르테논 신전을 만든 기술자들은 높은 수준의 공학 지식과 건축술, 미학적 상상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엄청난 돈과 인력을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하고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자 아테나 여신은 파르테논에서 쫓겨났다. 기독교 예배당이 되었던 파르테논은 오스만제국의 술탄 메메트 2세가 그리스 본토를 정복한 후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었다. 1687년 베네치아 군대가 아크로폴리스의 오스만제국 병력을 향해 쏜 포탄이 폭발하는 바람에 신전의 기둥 14개가 무너지고 지붕이 통째로 날아갔다.

그로부터 200년 후, 영국 외교관 엘긴이 파르테논을 뒤져 약탈해 갔다. 그리스는 1980년대 이후 ‘엘긴의 대리석’을 반환하라고 요구했지만 영국 정부는 언제나 냉정하게 거절했다. 그리스 민주화운동의 전사였고 세계적인 배우였던 메르쿠리도 문화 장관으로 일하면서 이를 돌려받으려 분투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저자는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박물관의 그리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전시실은 그들이 저질렀던 약탈행위를 증언하는 ‘외국 문화재 포로수용소’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갈한다.

민회를 열어 공적인 의사결정을 내렸던 아테네 민주주의의 무대 아고라와 프닉스 언덕을 돌아보고, 도시국가 시절에도 번화한 상업 중심지였던 플라카를 지나면서 맨발에 허름한 튜닉을 걸치고 배회하며 사람들을 붙잡고 질문했을 소크라테스를 떠올린다. 민주주의와 철학의 냄새가 난다고 표현한 플라카의 골목을 나도 걸어보고 싶어졌다.

아테네는 한 국가의 수도이고 3천 년 역사를 품고 있지만 냉정하게 말해, 초라해 보였다고 했다. 오래된 역사 도시는 역사 유적이 시민의 생활 공간과 분리된 경우가 많은데, 아테네처럼 분명하게 나뉜 도시를 아직 보지 못했다고 한다. 무스타파 케말에 참패, 2차 세계대전, 그리고 전후에 아테네 인구는 급속히 불어났다. 인구가 300만을 넘어서자 주택난과 교통난이 도시를 마비 상태에 빠뜨렸고 강과 공기가 속절없이 오염되었다. 1980년 대지진으로 도심의 건물들이 숱하게 무너졌고 파르테논을 비롯한 고대 유적도 큰 손상을 입었다고 한다.

철학과 과학과 민주주의가 탄생한 고대 도시, 1천500년(로마제국 붕괴와 그리스왕국 수립 사이) 망각의 세월을 건너 국민국가 그리스의 수도로 부활한 아테네는 비록 기운이 떨어지고 색은 바랬지만 내면의 기품을 지니고 있는, 남부러울 것 없었던 어제의 미소년이 세상의 풍파를 겪은 끝에 주름진 얼굴을 가진 철학자가 된 것 같은 도시라는 작가의 표현이 재미있으면서도 날카로웠다.

이스탄불 : ‘단색에 가려진 무지개’

역사가 무려 2천 700년이나 되는 이스탄불의 최초 이름은 비잔티움이었고, 콘스탄티노폴리스(콘스탄티노플)로 이름이 바뀐 4세기부터 15세기까지는 동로마제국의 수도였으며, 그다음 500년은 오스만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이었다.

오랜 세월 경제적•문화적 번영을 누렸던 이 도시는 20세기 튀르키예의 영토가 된 후 국제도시의 면모를 거의 다 잃고 말았다. 비잔틴제국의 역사와 문화는 실종되었고, 그때 만든 몇몇 건축물만 박제당한 공룡처럼 덩그러니 남아있다.

지금의 아야소피아는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537년에 완공했는데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시련을 겪었고 여러 차례 생사 갈림길에 섰다. 정작 교회였던 아야소피아에 최초의 심각한 손상을 입힌 것은 유럽의 기독교도들인 십자군이었다. 로마 카톨릭 신도였던 그들은 콘스탄티노플에 본부를 둔 정교회에 강력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교회의 성상 숭배 금지 조처가 결정적인 계기였다. 

아야소피아 최대의 위기는 1453년 오스만투르크의 콘스탄티노플 점령이다. 술탄 메메드 2세가 아야소피아만은 파괴하지 못하게 막았다. 도시 이름을 이스탄불로 바꾸어 오스만제국의 수도로 선포한 그는 원래 이름 ‘하기야 소피아 성당’을 외부에 4개의 미나레(첨탑)를 세우고 내부 벽의 기독교 성화를 회반죽으로 가리는 등 ‘아야소피아 자미(Camii,이슬람사원)로 개조했다. 주인이 바뀔 때마다 다른 정체성을 겪어야만 했을 아야소피아 박물관이 왠지 안쓰럽게 느껴졌다. 

토프카프 궁전은 메메트 2세와 오스만제국 초기 술탄들의 드높았던 자존감을 보여준다. 오스만제국은 투르크족만의 국가가 아니라 다양한 인종과 민족, 상이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는 제국이 되었고 이스탄불은 그런 제국의 수도다운 도시로 발전했다. 투르크인, 그리스인, 이탈리아인, 튀르키예인, 아르메니아인, 조지아인, 쿠르드인이 섞여 살았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등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했다.

오스만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손잡았다가 최후를 맞았다. 이집트, 이라크, 팔레스타인을 영국에, 모로코, 튀니지, 시리아와 튀르키예 남동부 지역을 프랑스에 내주었으며, 에게해의 섬 대부분과 에게해 연안 도시들을 그리스에 빼앗겼다. 

이 제국의 폐허 위에 무스타파 케말이 튀르키예공화국을 세웠다. 스스로 ‘아타튀르크(투르크인의 아버지)’라고 명명했던 그는 튀르키예를 ‘튀르키예화’했다. 다문화, 다종교, 다민족을 포용했던 이스탄불이 단색의 도시로 바뀐 것은 튀르키예화의 불가피한 결과였다. 19세기 유럽 어느 지식인이 ‘세계의 수도’가 되리라고 예언했던 이스탄불은 변방의 가난하고 슬픈 도시로 변했다. 

이제야 그때 내가 이스탄불에서 느꼈던 혼돈과 혼재, 모호함 같은 애매한 감정들이 짐작이 갔다. 그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도시, 단색을 걷어내고 그 아래 무지개를 찾는 것은 여행자 각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간다면 보스포루스해협이 창밖으로 보이는 카페에서 튀르키예식 커피를 마시고 오스만 제국의 학살 발언으로 미움을 받고 있는 오프한 파묵 하우스에도 가 보리라.

오세방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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