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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병 | 아몬드 | 2023년 3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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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의학의 그릇에 담기지 않는 고유하고 다양한 아픈 몸들의 인류학
지은이 이기병은 내과 전문의이자 인류학 연구자이다. 이 책은 작가가 군복무 대신 공중보건의로서 가리봉동 외국인 노동자 전용 의원에서 보낸 3년 동안 환자를 보살핀 경험을 인류학과 접목한 고찰들이다.
책을 읽다 보면 무릎을 '탁' 치게 할 만큼 찰떡인 제목들을 가끔 만난다. 제목은 책의 얼굴이고 이름이라는 대표성을 가지는 만큼 알맞은 제목은 작가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 전달의 화룡점정인데 제목 선정에 있어서 아쉽다고 느낄 때가 가끔 있다. 특히, 외국어책의 번역본에서 이 실수는 자주 일어나고 원작자에게 내가 괜히 미안해지는 경우도 있다.
작가는 사람의 몸이 ‘현대 의학에서 규정하듯이 뚝 떨어진 독립된 섬’이 아니라 ‘개인이 속한 환경, 사회에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있는 것’이므로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데 그가 속한 사회환경을 같이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연결된 고통>은 몸에 속한 고통은 과거와 현재의 환경에서의 고통 그리고 그를 그 지경에 몰아넣은 사회의 고통과도 연결된다는 책의 요지를 아주 잘 반영한 제목이다.
목차를 살펴보자.
1. 갑상샘 호르몬의 진실: 재현의 목적은 본질의 장악에 있다
2. 술과 심부전: 돌아올 수 없는 강은 한 번에 건너는 것이 아니다
3. 어느 HIV 청년과 약혼자: 낙인이 치료에 미치는 영향
4. 옴과 헤테로토피아: 그들에게 쉼터는 장소 바깥에 있는 장소였다
5. 요통, 변비 그리고 실신: 좋은 의료란 무엇인가
소제목 중 왼쪽 제목은 임상 사례이고 오른쪽은 그 사례를 통해서 얻은 철학적 인문학적 고찰이다. 작가는 의학 전공을 끝낸 후, 다시 인류학을 전공했다. 인류학 전공은 작가가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설명되지 않는 난관들에 부딪혔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길 원했던 작가의 노력이었을 것이다. 예로부터 의학 드라마나 서적은 재미가 없을 수 없다. 거기엔 인간에 대한 사랑과 희망, 그리고 안타까움 등의 감동이 녹아 들어 있기 때문이다.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재미있고 거기에 인류학자로서의 접근이 가미되어 있어서 깊이를 더 한다.
책의 말미에 ‘이분법적 사고’의 문제를 말한다.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작가 또한 몸과 마음을 이분법으로 가르고 있는 자신을 의료 현장에서 발견한다고 고백한다. 학문의 체계가 정돈되고 이성을 중시하게 된 근대 이후로 주체와 객체, 자아와 타자, 작용과 반작용, 신체와 정신, 원인과 결과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 체계가 지식 사회 전반을 움직이는 구조의 동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삶과 질병을 재단해 온 ‘이분법’이 고통을 줄어들게 했는지 아니면 되레 부추기지는 않았는지 잘 살펴야 한다.
이 책 면면의 이야기에서 작가는 우리의 고통은 겹겹이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몸과 마음, 삶과 죽음, 자아와 타자, 개인과 사회의 고통이 모두 그러하다. 누군가에 의해 함부로 재단되어 목소리를 잃은 고통이 언젠가 나와 당신의 것일 수 있다. 어쩌면 이 글의 목적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상호 호환되는 이 세상에서 그것이 단 한 사람의 것일지라도, 누군가의 고통을 해석하고 줄여보고자 하는 작은 노력이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그 단순한 사실을 환기하는 데 있을지 모른다.
맺음말에서 작가는 ‘누군가는 경계에 서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작가에게 반기를 들고 싶다. 이 말의 의도는 충분히 알겠다. 하지만 경계라는 표현에 있어서 약간의 수정이 필요하다. 개인과 사회, 몸과 마음, 삶과 죽음, 개인과 타자에 진정 ‘경계’라는 것이 존재할까? 이 책을 읽은 후의 독자로선 더더욱……
의대 증원 이슈로 어수선하다. 정부와 의사들 간의 싸움으로 고통받는 이는 결국 환자들이다. 총선 이슈로 어수선하다. 공천받은 국회의원들과 탈락한 의원들 밥그릇 싸움으로 고통받는 이는 결국 국민들이다. 의사와 국회의원, 둘에게는 큰 공통점이 존재한다. 환자를 돌보는 마음, 국민을 돌보는 마음, 이 숭고한 마음이 기본에 깔린 자, 그들만이 감히 염두에 둘 수 있는 귀한 직업이라는 점이다.
쉽게 읽혀 하루 이틀이면 다 읽을 수 있지만 전반에 흐르는 삶의 고찰은 씹고 또 씹고 되새김질하여 삶에 녹여낼 만하다.
임혜영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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