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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_ 최우수상] 어둠으로 인해 보이는 순간들

[2020-12-14, 10:32:11] 상하이저널

2020년 1월 21일! 처음 중국에서 코로나19 소식을 접한 날이었다. 공항에서 체온을 재고 온갖 이상한 낌새가 있다는 메시지가 퍼졌다. 그 후로 공항에서 굉장히 오랜 기다림  끝에 상해를 떠난 사람들의 안도감이 전해졌다. 반대로 중국에 남은 사람들의 공포는 커져만 갔다. 중국의 대명절인 춘절을 앞두고 세기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모두가 즐거워해야 할  춘절은 그야말로 전쟁이 끝난 후의 폐허와 같았다. 밖은 어두컴컴 을씨년스러웠고, 조각난 플라타너스 낙엽만 뒹굴고 있었다. 도로에는 차 한 대, 쥐새끼 한 마리도 돌아다니지 않았고 사람들은 모두 집안에서 상해의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와 코로나바이러스의 공포에 떨었다.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한국에서 중국발 사람들의 격리와 한국행 항공편이 취소된다는 소식을 들은 우리 가족은 대혼란에 빠졌다.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한국의 정기치료를 받고 있는 둘째 딸아이 때문이었다. 갓 8살이 된 딸아이는 치료를 받지 않고는 온몸에 꽃처럼 피어나는 건선염을 견딜 재간이 없었다. 결국 2월 예약한 한국행 항공편은 취소가 됐고, 우리는 중국 상해에 발이 묶였다. 

중국정부에서는 춘절명절기간을 늘리고 모든 기관의 출입 제한지침이 내려졌으며, 나의 직장 또한 재택근무가 시작됐다. 그러나 재택근무로 조치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방역 필수요원으로만 출입이 제한됐던 학교 교문을 드나들면서 중국과 한국정부의 긴급요구 사항들에 응답하며 매일같이 지옥같은 나날들을 버텨내고 있었다. 해결 불가한 민원요구사항들도 폭증했다. ‘대한민국에서 안되는 게 어딨니’ 라는 당당함이 이 중국땅에서도 마치 통할 것 같은 민원인들의 논리를 설득시키는 시간들에 지쳐갔지만 일부 절박한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조치를 위한 방법 또한 찾아내야만 했다. 

이런 힘든 시간이 계속될 무렵 유일하게 힘이 됐던 것은 같은 직장 내 동료들이었다. 출근을 위해 현관문을 나설 때마다 밖은 위험하다며 막아섰던 나의 식구들처럼, 아마 내 동료들의 식구들도 마찬가지 심정이었을 것이다. 나처럼 식구들에게 괜찮다 다독거리며 본인의 직장을 위해 전투태세를 갖추고 나왔을 그 사람들이 있어서 견딜 수 있었다. 특히, 자비로 버스 내 위생에 신경써가며 묵묵히 직원들의 안전을 책임져준 기사님, 대외업무 담당인 중국인 예쁜 동생, 그 외 동료들….

‘위기는 곧 기회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위기를 함께 한 이 사람들은 나와 국적은 달라도 지금도 기회를 함께 하고 있다. 아마 그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학교의 위기 시 큰 의지가 됐음에 어떠한 표현으로도 부족할 만큼의 고마움으로 남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자 상해를 떠났던 모든 사람들이 다시 상해로 복귀하는 것을 무서워했고, 한국에서는 안부를 묻는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온갖 질책과 걱정스런 말들...... 식구들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말 하나하나에 가슴이 미어졌다. 갑작스런 재난사태에 당황스럽고 겁이 났지만 우선 아이들이 다닐 학교가 걱정이 됐다. 집단생활을 하는 곳이기에 방역이 뚫리면 학교를 폐쇄해야 할 사태에 놓일 수도 있을 터였다. 중국정부에서 우리 한국인 학교에 호의를 베풀어 줄 희망은 없었다. 학교는 학생들이 생활하는 곳이기에 더 까다로운 위생지침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더 많은 제한을 두었다. 학교에서는 재난상황이 더 심각해졌을 때를 대비해 학교에 필요한 위생용품을 모으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들이 계속됐다. 중국정부, 한국교육부, 영사관, 학부모회 등 그리고 학교자체에서도 체온계, 마스크 등 1인이 구매할 수 있는 양이 제한되었기에 소량으로 물자를 확보해갔다. 학교 교직원들은 모두 하나가 됐다. 

그러는 사이 한국병원의 치료약이 끊긴 둘째 아이의 몸에는 하나씩 둘씩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한국에 나가도 ‘자가격리 기간 동안은 병원진료를 받을 수 없다’ 하는 한국의 병원에 우리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애원하였지만 ‘어쩔수 없다’라는 답변만 일관되게 돌아왔다. 이미 화산병원 등 중국의 몇몇 병원에서 치료를 실패한 후 한국치료를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의지할 것이라고는 한국의 진료 뿐이었다. 항공권이 취소되긴 해도 아예 못나가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아이랑 아빠 둘만이 항공권을 구입하여 한국으로 나가기로 했다. 신랑은 가족과 함께 하는 생활을 위해 작년 6월에 육아휴직을 선택하고 우리에게로 날아온 터였다. 가족이 모두 움직일 수 없어 최대한 합리적인 대안을 찾은 것이었지만 둘째 아이는 엄마 없이는 하루도 지낼 수 없다면서 그리고 혹시 엄마한테 다시 돌아오지 못하면 어떻게 하냐면서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오랜 시간 끝에 우리 식구는 큰 결심을 했다. 가족모두 같이 있기로. 아이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갔다가 못 들어 올 수도 있고 그렇다면 가족이 또다시 떨어져 살아야 하며 사춘기 큰아이의 학교생활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었다. 

가족이 함께 하기로 한 이상 코로나 재난기간동안의 가족생활 수칙이 필요했다.

첫째, 병원에 가는 것이 더 위험했기 때문에 가급적 병원에 갈 일이 없어야 했다. 건강관리는 필수였다. 특히, 둘째 딸아이의 건선염은 몸의 면역체계 불균형 문제이기 때문에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었다. 구할 수 있는 야채가게를 찾아 야채를 구해 먹는 생활을 일상화했다. 시금치, 양파, 마늘 등 우리는 평소 먹지 않던 야채를 먹기 시작했다.  

둘째, 밖에는 가급적 한사람만 나갔다. 내가 직장에 나가야 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귀가하면서 최대한 조치하려고 노력했다. 마트에 식료품이 부족할 것이기에 사재기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매일 조금씩 여러 곳에서 구매했다. 이 재난이 조만간 끝날 것이라는 소망으로….

셋째, 외부 출입을 하는 나는 모든 것을 따로 썼다. 식기류, 수건 등 모두 분리해 놓고 썼으며, 잠도 따로 잤다. 아이는 달라진 엄마의 태도에 당황했지만 우리 식구들은 이내 익숙해졌다. 내가 들어오면 현관문을 소독하고, 옷은 그날그날 모두 따로 세탁했다. 나로 인해 우리집에 코로나바이러스가 들어올 수 없도록, 나로 인해 우리학교에 코로나바이러스가 들어갈 수 없도록.

마침내 하늘길이 막혔다. 아이의 ‘떼’부림이 결국 우리 네식구를 함께 할 수 있게 했다. 둘째 딸아이의 몸에는 이전 중국병원에서 치료제로 썼던 항스트로이제 연고가 발려졌다. 임시방편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최대의 위기상황에서 우리식구의 최대의 장점인 무한긍정에너지를 쏟아내기로 했다. 구할 수 있는 식료품을 최대한 구입해 식구들과 요리해 먹으며, 일부러 웃을 수 있는 코미디프로그램을 보고 매일같이 배꼽이 빠져라 웃었다.

둘째 딸아이의 몸상태를 보며 한없이 울었고, ‘괜찮을 거야, 이또한 지나가리라’를 외쳐가며 서로를 격려하는 식구들의 애정은 깊어만 갔고, 식구들이 집안에서 활동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영역을 넓혀갔다. 큰아이는 집에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서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했고, 작은아이는 내가 학교에 갈 때마다 수십권의 책들을 갖다 나르는 정성으로 지금은 책벌레가 됐다. 신랑은 작은 거실을 개인 헬스장으로 만들어서 틈틈이 운동을 하며 승진공부에 매진했다. 나는 방 한칸을 아예 업무공간으로 만들어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점심시간 외 출입을 금하고 재택근무를 해나갔다. 우리가족의 이러한 감금생활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우리가족의 안전을 위해, 집단생활을 하는 나의 직장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아이들이 학교에 정상 등교하기 전까지 계속됐다. 우리 가족은 위생수칙을 잘 지켜낸 결과 확~찐자들이 되었지만 나름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버텨냈다. 

코로나 창궐! 뜻밖의 재난 상황에 많이 겁나고 힘들었지만 우리는 이내 재난을 극복하는 자세에 임했고 이제는 이미 건강한 자세에 익숙해져 있다. 과연 무엇이 나를 이렇게 강하게 만들었을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는 나의 신념과 학교를 걱정하며 함께 해 줬던 직원들 그리고 무한긍정에너지의 원천인 가족이었을 것이다. 재난상황이 하루빨리 끝나고 다시 평온한 세상이 오길 꿈꾸지만 이러한 믿음 또한 재난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크나큰 교훈이 아니었을까.
 
‘피할수 없으면 즐겨라.’ 재난을 즐길 만큼은 아니더라도 ‘재난 올테면 와봐라 우리는 또 보란 듯이 이겨낼 터이니....’ 난 그러리라...... 믿는다.  

2020년 11월 상하이에서


임옥화(상하이 교민)

전혀 예상치 못한 수상소식에 많이 당황스럽습니다. 처음에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큰아이의 도전이었고 그 도전에 조언을 해주다 맘 상한 큰아이한테 ‘엄마는 엄두도 못내면서….’ 살짝 무시를 당했습니다. ‘야! 엄마는 썼다 하면 대상감이야’하고 너스레를 떨며 오기로 몇 줄 써서 보여준 게 시작이었습니다. 암울했던 코로나 사태가 생생하게 기억나면서 마지막 문장까지 쉼 없이 짧은 시간 내 완성이 되었습니다. 한참을 잊고 지냈는데 당선작 발표 후 직장 동료가 위챗으로 꽃다발을 보내왔습니다. 너무 당혹스러워 ‘저 아닙니다. 동명이인인가 봅니다’하고 웃어 넘겼는데 여기저기 축하인사가 이어져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두 딸에게 엄마의 위신이 선 것 같아 상하이에서의 추억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외국에서 느닷없이 닥친 재난사태를 극복해나가는 과정들을 지켜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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