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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상하이 218] 파리에서 만난 말들

[2023-12-02, 08:10:53] 상하이저널
목수정 | 생각정원 | 2023년 9월
목수정 | 생각정원 | 2023년 9월
-프랑스어가 깨우는 생의 순간과 떨림

11월 말 샹제리제 거리 가로수들의 장식등이 켜지면서 파리는 본격적인 겨울로 들어선다. 아침인지 낮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어두운 오전을 보내고 창밖을 내다보면 흐린 하늘에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손끝과 마음 구석까지 시리게 하는 이 겨울은 다음 해 2월 말이 되어야 끝이 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은 끊임없이 몰려들고 사진을 찍으면서 파리의 아름다움을 찬양한다. 파리가 가진 매력은 무엇이며 프랑스가 무엇이길래 이토록 사람들은 이곳으로 몰려드는 것일까…. 

작가는 파리에서 산 지 20년이라 하니 아마도 예전에 내가 첫발을 디뎠을 때와 비슷한 시기에 이곳에 다다른 듯하다. 그녀가 본 파리는, 프랑스는 어떤 모습이고 어떤 언어들로 둘러싸여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시작한 책 읽기는 시작한 순간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책장을 넘기게 했다. 책은 34개의 프랑스 단어들을 〈달콤한 인생을 주문하는 말〉,〈생각을 조각하는 말〉,〈풍요로운 공동체를 견인하는 말〉로 분류하고, 각 단어가 프랑스 사회에서 어떻게 일상을 반영하는지, 사회 현상들과 단어의 기원은 어디서 오고 오늘날 어떻게 우리의 삶과 연계되어 있는지를 철학과 문학작품의 예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Doucement ‘천천히 부드럽게’라는 단어를 설명하면서 든 예로 아이가 학교에 늦어서 뛰어가다가 다친 상황에서 주위 사람들이 앰뷸런스를 부르면서 “학교에 안 늦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너의 안전이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데서 난 웃음이 터졌다. 너무나 한국적인 마인드에서는 학교는 절대 늦거나 빠져서는 안 되고, 반드시 개근상을 타야 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일상이었기에 나 자신도 내 아이들에게 그대로 실천해서 내 아이들도 웬만한 감기로는 학교를 빠지게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항상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녀가 나열한 단어들 중에는 내가 그리 공감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었지만 아페로( Apéro) ‘식전주의’에 대해서만은 200프로 공감하였다. 왜 우리는 삶을 즐기지 못하고 삶을 처절하게 살아내야 한다고만 생각하고 사는 것일까… 저자는 “아페로를 즐기는 순간, 우린 살아가려 애쓰는 처절한 생존 기계가 아니라, 삶을 즐기는 유쾌한 존재들이란 사실을 서로에게 일깨운다”라고 말한다. 

내가 이곳에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단어들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Merci Je m’en fou “상관없어”
-Ce n’est pas ma faute “내 잘못이 아니야.”
회사 다니면서 지겹게 들은 문장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자기의 잘못이 아니라고 발뺌하는데 익숙한 것이 이들의 기본적인 태도인가 하고 의심했었다. 
-Je n’ai pas envie “하고 싶지 않아.” 
난 속으로 하기 싫어도 해라고 생각하면서.
-Ça dépend “상황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얘기. 이곳은 모든 것이 “싸 데팡”이다.
-Si tu veux. “원한다면”
상대가 나에게 무엇인가를 꼭 해줘야 할 때도 끝에 ‘네가 원한다면’ 이라고 붙인다. 밥 먹을래? Si tu veux, 영화 볼래? Si tu veux.

진정 자유는 넘쳐난다. 통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는 자유에 대한 이들의 당당함은 때로는 부러울 때가 있다. 한국은 타인에 대한 의식 때문에 21조 명품시장의 1위로 당당히 올라서서 LVMH를 살찌우고 있는 게 아닌가 잠시 생각해 보았다. 한국 사회를 상징하는 단어들은 무엇이 있을까…. 사라지고 있는 “우리”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가볍게 시작해서 끝까지 가볍게 읽기엔 뒤로 갈수록 작가의 시선이 너무 한쪽으로 쏠리면서 균형을 잃고 있어서 아쉽다. 하지만 언어를 통해 프랑스 사회를 잠시 엿볼 수 있는 목수정님의 책을 흐린 잿빛 파리 하늘에서 권해 드리고 싶다.

이현영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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