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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상하이 187] 눈뜬 자들의 도시

[2023-04-12, 16:23:18] 상하이저널
주제 사라마구 | 해냄 | 2022년 10월
주제 사라마구 | 해냄 | 2022년 10월
비가 쏟아지는 날 한 도시의 투표소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람들은 쏟아지는 비 때문인지 정부 관계자들의 애를 태우며 투표소에 나타나지 않다가 약속이나 한 듯이 네시가 되어 투표소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투표 결과 칠십 퍼센트 이상이 모두 백지였다. 정부는 일 주일 후 재투표를 결정했고 결과는 백지투표 83%였다. 대통령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도시를 봉쇄하여 사회적 불안과 투표권을 방해한 전복 세력을 색출해내고자 한다. 하지만 도시의 시민들은 예상과 달리 아무 일 없이 차분히 생활한다. 정부는 급기야 전철역에 방화하고 희생자를 만들어 이를 백지투표를 조장한 세력의 탓으로 돌리고자 한다.

제목에서 눈치챘을 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눈먼 자들의 도시>의 저자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으로 눈먼 자들의 도시 배경의 4년 후 이야기이다. 모두 눈이 멀었던 시기에 의사 부인만이 눈이 멀지 않았고 그녀가 살인했다는 편지를 접한 정부는 비밀경찰을 보내 그녀가 조직의 우두머리이고 백지투표의 배후라며 사건의 책임을 물으려 한다.

정부는 시민들의 백지투표의 의미를 파악하려 하기보다는 그들로 하여금 백기를 들고 항복하게 하고자 도시를 봉쇄하고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고자 한다. 

작가가 포르투갈 사람이니 외국어로 쓰였을 게 분명한데 상상력이 아닌 이 모든 것을 경험한 후에 우리나라 언어로 쓴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과거와 현재의 우리 정치 상황과도 묘하게 닮아 있다. 어떤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하고자 하는 생각이 중요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 부인을 심문해 희생양으로 삼으라는 장관과의 통화 후 경정은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내 일을 하고 있어. 주어진 명령을 이행 했어. 그러나 그의 양심 깊은 곳에서 그는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았다.
의사 부인이 사 년 전에 눈이 멀지 않았다고 해서 수도의 유권자 83%가 백지투표를 하는데 책임이 있다고 믿을 수 없다... 
그냥 목표로 삼을 과녁이 필요할 뿐이야. 이게 안 되면 다른 걸 찾을 거야. 그게 안 되면 또 다른 것, 또 다른 것을, 마침내 성공할 때까지. 아니 단순한 반복 때문에 그가 설득하려는 사람들이 그의 방법과 절차에 무관심해질 때까지 얼마든지 찾을 거야. 

결국 경정은 그녀를 도와 도주하라고 전화하며 그 이유에 대해 또 이렇게 말한다.

책에서 읽은 것 때문이오. 오래전에, 그동안 잊고 있었지만,  며칠 전에 생각이 났소.
우리는 태어나는 그 순간 평생 지킬 협정에 서명한 것과 마찬가지다. 

태어나는 순간 평생 지켜야 하는 협정이라는 게 있고 심지어 내가 진짜 서명했는지 조차 모르겠고 남이 대신 해준 건 아닐까 싶을 만큼, 살면서 지켜내기 어려운 협정이라는 게 있을 것 같다. 그게 양심 일수도, 정의일 수도 있으리라.  내가 살아가면서 잊지 않고 싶은 구절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제목이 왜 눈뜬 자들의 도시였을까 생각해보았다. 

거짓말 탐지기를 이용해 백지투표를 했는지 확인하려는 비밀정부 요원에게, 반대로 거짓말탐지기의 타당성을 검증하게 하는 여인, 청소부 파업으로 자발적으로 도시를 청소하는 시민, 무조건 지시하고 명령하려는 정부에 대해 사표를 내고 걸어 나가는 법무부 장관과 문화부 장관, 그리고 의사 부인을 도운 경정, 이들을 포함해 궂은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투표장에 가되 백지투표를 선택한 이 모든 이들의 도시는 눈뜬 사람들의 도시 아니었을까? 

지금 나의 도시는 눈먼 자들의 도시일까, 눈뜬 자들의 도시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정혜심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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