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도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고, 지리는 달달 외우는 지루한 암기과목이라고 생각했기에 내가 읽을 일이 없는 책이라 생각했다. 이과 성향이 뚜렷한 큰 아이가 ‘이과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이쪽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느껴질 만큼 흥미로운 책’이라며 권하기에 읽게 되었다. ‘Prisoners of Geography’라는 제목이 보여주듯이 “지리” 라는 변하지 않는 사실이 어떻게 우리 생활을 얼마만큼 큰 영향 안에 가두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저자 팀 마샬은 영국 기자로, 세계 구석구석을 다녀보며 겪은 경험을 통해 이해한 세상을 설명하고 있어 재미있는 강의를 듣는 것 같다. 그는 저널리스트답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건에 그 시대의 정치인이나 언론인의 말을 덧붙여 독자로 하여금 위트와 비유를 곱씹으며 생각해보게 하는 재미를 준다. 예를 들어 ‘신은 바보들과 주정뱅이들, 그리고 미국에게 특별한 섭리를 베푸셨다’는 폰 비스마르크의 말을 인용해 미국이 지리적으로 받은 축복을 설명한다.
이 책은 세계를 10개의 지도로 나누어 1)중국, 2)미국, 3)서유럽, 4)러시아, 5)한국과 일본, 6)라틴아메리카, 7)아프리카, 8)중동, 9)인도와 파키스탄, 10)북극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래서 관심 가는 나라부터 읽거나 내키는 대로 읽어도 좋다.
중국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 냉전 시대 이후 세계 최강국의 자리를 지켜왔던 미국을 위협하는 막강한 존재로 부상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티베트와 신장 지역의 중요성, 해상 영향력을 장악하고자 하는 노력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미국이 루이지애나, 플로리다, 알래스카 등 전략적 영토 구입으로 지금의 세계 최강국으로 자리 잡게 된 과정도 설명한다. 미국과 중국 이 두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고 세계에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노력은 이 책의 도처에 등장한다.
한국 편에서는 지리 수업 시간에 늘 듣던 한반도의 지정학적 의미, 북한과의 긴장 관계, 일본과의 긴 역사를 통한 대립 관계를 제3국의 눈으로 바라보는 점이 흥미로웠다.
아프리카는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지리적 현실을 무시하고 임의로 그은 국경선으로 인해 수많은 민족과 언어가 통합되지 않고 갈등으로 이어져 내전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리비아, 콩고민주공화국의 예로 설명한다. 중동 역시 지형학적 특성을 무시한 유럽 식민주의자들이 자의적으로 그은 국경선으로 인해 다양한 민족, 다양한 이념을 가진 국가들이 겪게 된 갈등을 설명하고 있다.
책을 읽고 나니 다른 나라에 비해 부족한 천연자원, 지리적으로도 작은 면적, 수많은 외세침략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리적 한계를 극복한 우리나라의 교육과 기술 발전이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 수업 시간에 늘 들어왔던 이야기가 정말 놀라운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나 자국의 이익을 위해 세계 각국이 치열하게 다투는 이 상황에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명과 지형을 확인하기 위해 먼지 쌓여 있던 지구본을 돌려보고 책을 다 읽고 나니 세계를 한 바퀴 돌고 난 듯하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 관해 관심을 두게 되었다는 점에서 내 인생의 지도에서 ‘지리’라는 새로운 땅을 밟게 된 느낌이다.
정혜심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 상하이방(http://www.shanghaiba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평생 읽을 것 같지 않던 지리 관련 책을 지인이 읽고 좋다고 하길래 빌렸습니다. 덕분에 읽기 전 예습을 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