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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이야기] 김장 담그기

[2008-12-28, 21:01:20] 상하이저널
“여보세요! 여기 ㅇㅇ마트인데요, 주문하신 배추 도착했으니 찾아가세요.”

늦은 점심을 먹고 나른해진 오후에 걸려온 전화 한통으로 마음이 바빠진다. 겨울 동안 먹을 김치를 담그려고, 동네 시장을 돌아다녀보아도 짙푸른 겉잎에 노란 속살을 가진 한국식 배추를 찾기가 쉽지 않아, 조금 비싸도 한국 마트에 배추를 주문해놓은 참이었다. 게다가 푸동에 살고 있으니 배달도 되지 않고, 직접 배추를 사러가야만 한다.

‘지금 나가서 배추를 사오면 오늘밤에 절여 내일 담가야겠다. 그럼 미리 마늘도 다져놔야 하고, 파도 다듬어 놔야 하고……’ 김장은 많이 담가야지 하는 마음에 배추를 서른포기나 주문을 해놨으니 김치 담글 생각에 머릿속이 바빠진다. 배추를 반으로 쪼개서 소금물에 절이기 시작을 하니, 산더미처럼 보이는 배추에 시작도 하기전에 기가 죽는다. 배추를 절여놓고 마늘을 까면서 엄마가 김장을 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어릴적 겨울철에 먹는 반찬은 거의가 김치와 연관이 있는것이었다. 땅속에 묻어둔 김칫독 속에서 금방 꺼내온 김치와 무, 얼음이 동동 뜨는 김치국물에 말아먹는 국수와 밥(김치를 송송 썰어넣고, 참기름을 살짝 뿌려 김치국물에 찬밥을 말아먹는 김치말이밥은 지금도 친정아버지가 정말 좋아하시는 음식이다).

김치가 시어지기라도 하면 김치찌개며 김치전이며, 설 무렵이면 김치를 한껏 다져 만두속도 만들어야 하고, 솜씨 좋은 엄마의 김치 맛은 친척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나서 누가 조금만 달라고 하면 손 큰 엄마가 듬뿍 싸주어야 했으니, 김장을 했다 하면 백 포기가 넘기 일쑤였다. 그 시절 김장을 하는 날은 집안이 잔칫날처럼 북적거렸다.

아버지는 마당 한 켠에 김장독 묻을 자리를 만들기 위해 추운 날임에도 윗옷을 벗고도 땀을 흘릴 정도로 열심히 삽질을 하셨고, 동네 강아지 일손이라도 빌릴 수 있다면 빌리고 싶었던 엄마는 투덜거리는 우리 자매에게 마늘 까는 일이며 파 다듬는 일을 시키셨다. 누가 작은 심부름만 해줘도 일하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그 때 미리 알았더라면, 마늘 까면서 그렇게 투덜거리지는 않았을 텐데….

추운 겨울날 한기가 도는 마루에 앉아 커다란 함지 가득 빨갛게 속을 버무리기 시작하면, 우리 삼남매는 제비 새끼 마냥 엄마 옆에 앉아 연신 입을 벌려가며 배추쌈을 얻어먹곤 했었는데, 지금 속을 버무리는 내 옆에서 나의 아이들이 어릴적 내 모습처럼 연신 입을 벌리며 앉아있다.

내친김에 우리 엄마가 하던대로 큼직한 돼지고기 덩어리를 된장풀은 국물에 말랑하게 삶아내고, 잘 절여진 배추속과 빨갛게 버무려진 김치속을 곁들여 보쌈을 만들어 주니 입을 한껏 벌리고 정말 맛있게 먹으며 연신 엄지 손가락을 올리고 있는 나의 아이들의 모습에서 어릴적 나와 우리 남매들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열심히 배추속을 넣던 우리엄마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지금의 내가 그 때의 우리 엄마 보다 더 나이를 먹어 있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온다. 김장이 끝나고, 양념이 발려진 그릇들은 깨끗이 설거지 하고 나면 엄마는 투덜이 딸들을 데리고 목욕탕에 가셔서 하루의 피로를 씻곤 하셨다.

이 삼일 정도를 고생하고 난 후에 마당에 묻어진 김칫독 속에 가득찬 김치를 떠올리며 한 겨울 준비를 다했다는 생각에 얼마나 마음이 든든하셨을까? 비록 김칫독은 아니지만, 김치냉장고 속의 김치통마다 그득 그득 들어있는 김치들로 인해 오늘은 그 누구보다도 부자가 된것 같은 기분이든다.

나도 우리 엄마처럼 뜨끈한 탕속에 앉아 뭉친 어깨랑 허리나 좀 풀어볼까? 어쩐지 엄마의 김장김치가 많이 그리워지는 날이다.
▷푸둥연두엄마(sjkwon2@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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