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 공감 한 줄]
우리 시대 남겨진 ‘투명인간’
성석제 소설 ‘투명인간’ 한국 근현대사 속 가족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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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 창비 | 2014. 6 |
책을 고르다 보면 책마다의 맛이 느껴진다. 어떤 책은 카푸치노의 부드러움이 입술에 내려앉는 것처럼 마음을 따듯하게 해준다. 어떤 책은 에스프레소의 원액처럼 쓰기도 하다. 내겐 성석제의 소설 '투명인간'이 뱉고 싶어 내도 뱉을 수 없는 쓰디쓴 책과 같았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독서 모임을 통해서였다. 상하이에는 다양한 독서 모임이 있다. 매주 수요일마다 진행하는 지식경제 모임인 지경모, 토요일마다 진행하는 리더스 클럽, 일요일 글쓰기 작가 모임인 '상하이 작가의 방’ 등이 있다. 이런 독서 모임을 통해서 전혀 무지했던 한국 근현대사를 바라볼 수 있었다.
성석제의 소설 '투명인간'은 주인공 만수의 가족 일대기를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어울려진 책이다. 친구 중에 누군가 한 명은 있을 것 같은 흔해 빠진 이름 ‘김만수’가 주인공이다. 그 누구보다 기막힌 인생을 살아온 ‘김만수’를 통해서 우리 시대의 굴곡스런 인생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김만수’ 가족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대의 뼈아픈 아픈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만수의 할아버지는 일제 시절 지식인층으로 독립 운동에 참여를 한다. 그의 사상 문제로 인해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게 되고 화전민으로 전락을 하게 된다. 만수의 큰 형은 할아버지를 닮아 영특하다. 그래서 서울까지 유학을 가게 된 그였지만, 월남전의 참여 후에 생긴 고엽제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만수의 큰 누나는 친구의 배불리 먹을 수 있고 학교도 갈 수 있다는 편지 하나에 집을 나와 구로 공단으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공장 노동자의 삶 속에 내던지며 그녀의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어 간다.
만수의 작은 누나는 연탄가스 중독으로 인해 평생 침을 흘리고 숫자도 제대로 못 세는 신세로 변한다. 1970년대를 지나 1980년대 말의 격동기를 건너간 만수는 뒤늦게 사랑을 만나 잠시 행복을 찾게 되지만, 회사의 경영난으로 다시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의 손에 남겨진 건 평생 세차를 해서 돈을 벌어도 모자랄 만한 시위 손해 배상금이다. 게다가 손해 배상을 모두 갚아갈 무렵, 아내의 수술로 인해서 또 다시 빚을 얻어야만 하는 처지가 된다.
성석제의 소설 ‘투명인간’에는 근현대사 속의 일제 식민지, DDT, 고엽제, 유신헌법, 교통 경찰의 뇌물, 노동 시위 손해배상, 연탄가스 중독 등의 내용이 나타난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마음속이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내가 1983년도에 태어났으니, 분명 근현대사 속에서 인생을 함께 하지는 않았다. 또한 내가 읽은 근현대사와 관련된 책이라고는 대학시절 남들 다 읽어 본 '아리랑', '태백산맥'이 전부인 것 같다.
아버지 세대가 민주화를 위해 싸우고 있을 때, 내 세대는 취업과 스펙과의 전쟁 속에서 싸우기 바쁠 때였다. 하지만 소설 속의 시대 환경이 지금은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지금도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소외된 채 투명인간으로 살고 있는 우리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세월호 사건 속에서 잊혀 가고 있는 아이들의 노란 리본, 철탑 농성 속에서 보이지 않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노동 투쟁,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너무도 쉽게 거행되는 인력 조정 등 아직도 우리는 뼈아픈 근현대사의 역사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고 있지는 않는가 생각을 해 본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글이 여운에 남는다.
"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 함께 느끼고 있다고, 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써서 보여 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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