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Well-dying)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웰다잉은 웰빙(Well-being)의 대척점에 있는 개념으로, 잘 사는 것뿐만 아니라 잘 죽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죽음은 언제나 모든 이들이 두려워하는 삶의 피할 수 없는 종착역이다.
불로불사, 영생, 영원한 젊음 등은 오래전부터 수많은 이들이 추구해온 근본적 욕망이다. 물론 과학기술이 발전하며 노화로 인한 죽음은 언젠가는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는 요원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노화로 죽지 않더라도 생물체가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실제로 자연사로 생을 마감한 경우는 전체의 5%도 되지 않는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오는 죽음은 언제 찾아올지도 모르고 나이와 성별, 출신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행복한 삶을 바라는 것만큼이나 행복한 죽음을 대비해야 해야 한다는 것이 지지자들의 생각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잘 죽을 수’ 있을까? 웰다잉을 준비하는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해 보고자 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비교적 젊은 나이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사실상 무한하다는 인지적 착각을 보인다고 하는데, 이러한 착각을 버리는 것에서부터 웰다잉은 시작된다. 첫 번째 단계는 아무리 자신이 어리고 건강할지라도 죽음은 반드시 찾아온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죽음의 순간 이전에 끊임없이 그것을 직시하는 훈련을 한다면, 전 생애에 걸쳐 스스로의 마지막을 조금씩 이해하게 될 것이다.
사실 이러한 심리적 측면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마음가짐이 갖춰져 있지 않다면 그 어떤 행위도 시간 낭비일 수밖에 없다. 웰다잉을 준비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일 뿐, 본인이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 이 마음가짐을 ‘죽음수용 (Death acceptance)’이라고 부르며, 웰다잉을 긍정심리학적으로 연구하는 학계에서는 이 개념을 통해 죽음의 질을 측정한다.
좋은 죽음을 준비하는 태도
이것은 심리발달적 측면으로도 귀결된다.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인간의 생애를 여덟 단계에 걸친 발달 과제를 이루기 위한 대장정으로 정의했다. 이 중 웰다잉과 연관이 있는 것은 마지막 여덟 번째 ‘통합성 대 절망감’의 단계이다. 통합성은 ‘자아의 통합’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과거 삶의 궤적을 되짚어보며 모든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을 함께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과거를 향한 미련과 후회만을 남기게 된다면, 통합성과 대비되는 절망감이 찾아와 불행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 에릭슨의 설명이다. 니체의 아모르 파티 사상과도 비슷한 에릭슨의 주장은 좋은 죽음을 준비하기 위한 태도를 잘 정리했다고 평가받으며 웰다잉을 연구하던 심리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의 관심을 끌기도 하였다.
재력과 질 좋은 죽음
조금 더 물질적이고 실제적인 면을 고려해 보자. 금전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돈과 재력이 무조건적으로 훌륭한 죽음의 질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충분한 재력은 좋은 삶의 질을 위해 필요한 것이며, 힘 있는 재력가들의 비참한 말년을 보면 물질적 부유함이 질 좋은 죽음을 동반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만 일정 수준 이상의 재산이 어느 정도는 고독사 등의 ‘질 나쁜 죽음’을 예방해 준다는 점 역시 사실이며, 후술할 다른 접근법들을 시도하기가 더욱 용이해진다. 절대적인 척도는 될 수 없지만, 분명 재력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이점을 선사할 것이다.
건강과 죽음의 질
웰다잉은 사실 웰빙과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건강하고 활기찬 몸을 유지할 수 있다면, 말년에도 긍정적이고 죽음수용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 삶에 만족감이 높아질수록 미련이 남지 않기에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쉬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원동력이 되는 건강관리는 필수적이며, 또한 건강이 좋지 않아 이루지 못한 일이 있다면 필시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질 것이다. 주기적인 건강검진과 균형잡힌 식단운동 등으로 삶뿐만 아니라 죽음의 질 역시 높여 주어야 한다.
죽음 거부감 덜어내기 ‘유언장’
죽음 이후의 불안감을 덜고 죽음의 실존성을 재확인할 수 있도록, 맑은 정신에서 유언장 등을 미리 작성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이 유언장이 법적 효력이 있다면 더욱 좋다. 나이가 어리다고 혹은 기분이 나쁘다고 망설일 이유는 전혀 없다. 최근 들어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죽음 교육 역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데, 이곳에서 학생들이 미리 자신의 유언장을 작성해 보기도 한다. 이처럼 죽음 이후의 일을 미리 고려할 수 있다면 죽음을 향한 거부감 역시 필연적으로 줄어든다.
삶을 향한 미련 버리기
죽음을 향한 거부감을 줄인다는 것은 곧 삶을 향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삶을 비관하여 생명이 끝나기만을 바라라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기회가 있을 때 최대한 활용하여 스스로 원하는 일들을 해도 좋고, 친구들 혹은 가족들과 묵은 감정이 있다면 풀거나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효과적이다. 요는 삶을 되돌아봤을 때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느냐이며, 에릭슨이 말한 여덟 번째 단계를 통과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이다. 일단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여 스스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으로 시작하자.
‘고독사’ 피하기
죽음 중에서 가장 비참한 죽음은 고독사라고 한다. 말년에도 가족과의 연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평상시에도 대인관계 형성과 관리에 신경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것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만족감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내치지 말고 하나의 자산이라 생각하고 관계를 맺자.
삶의 모든 요소 긍정하고, 미련없는 이별 준비
죽음이란 상술했듯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모른다. 어쩌면 이 불확실성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말했듯, 죽음은 삶의 가장 훌륭한 발명품이며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자연스러운 단계이다. 죽음의 개념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지언정 삶의 종지부를 대비할 수는 있다. 삶의 모든 요소들을 받아들이고 긍정하고, 미련 없는 이별을 우리 모두 준비할 수 있다면 좋겠다.
학생기자 김보현(SAS 11)
ⓒ 상하이방(http://www.shanghaiba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