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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in 상하이] 상하이에 사는 아날로그人에게

[2023-12-09, 06:12:05] 상하이저널

혼자 중국 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 위챗 페이스톡은 큰 위안이다. 오래전, 국제전화 카드 한 장으로 가족, 친구들의 목소리를 아껴 듣던 때를 떠올리면 기술의 발전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어찌 보면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디지털 세상에 강제로 이주당한 셈인데, 다행히 난민 신세는 면하고 세상이 제공하는 편의를 반사적으로 누리고 있다. 그럼에도 아날로그 감성이 충만한 나는 여전히 가벼운 오리털 이불보다 목화솜 이불을 더 좋아하고, 옛날 노래에 위로받는다.  

‘아날로그’. 우리는 누군가 취향이 좀 촌스럽고 고루하거나, 과거의 방식으로 인간적 감수성을 고수하고자 할 때 이렇게 표현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근본적 차이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있다고 하는데, 예를 들어 아날로그 시계의 시곗바늘이 연속적으로 둥근원을 그리며 시간을 표시하는 반면, 디지털 시계는 숫자판에 불연속적으로 시간을 나타내는 것이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이유로 인간은 반복의 욕구를 상실하여 시간이 더는 원형으로 돌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연속성을 추구하는 아날로그적인 사람의 행복도가 조금 더 높다 할 수 있을까. 

중국 사회의 빠른 디지털화로 삶이 점점 실감 나지 않는다. 월급은 게임머니처럼 잠깐 숫자로 나열되었다가 큐알코드와 함께 사라지며 필요한 물건은 이미지와 후기만으로 구매한다. 자고로 옷은 입어보고 신발은 신어보고 사고 싶은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시류는 달갑지 않다. 어릴 적 분명 스스로를 너무 드러내지 말고, 아는 척 말고, 자랑하지 말라고 배웠는데 온라인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할수록 더 꽉 찬 삶을 구가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지금의 세태는 배신감이 들 지경이다. 그럼에도 가장 서글픈 것은 관계는 더욱 가벼워져 가고 만남과 헤어짐이 쉬워지는 것.

얼마 전 친구들과 데이팅 앱에 가입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점점 새로운 사람 만날 기회가 적어지는 이 사태를 현대식으로 극복해 보자는 시도였는데, 꼭 학교 앞 문방구 캡슐 뽑기 앞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핸들을 돌릴 때마다 우수수 떨어지는 예비 인연들. 예쁘게 포장된 글과 이미지를 정독하며 1등 다마고치 같은 인물이 뽑히길 기대했다. 결과적으로 나의 뽑기 실력은 꽝이었는데, 현실 친구가 될 ‘뻔’했던 첫 번째 인물은 유부남이었고, 두 번째는 데이팅앱 중독자였으며, 세 번째는 이름과 사진이 가짜였다. 스스로에게 3번의 기회를 준 나는 후련한 마음으로 앱을 삭제했다. 이 시대에 존재하며 가끔 내야 하는 벌금을 문 기분이었다. 

우리는 편리한 삶을 사는 대신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걸까. 점점 사물을, 사람을, 삶을 멀리서 바라보는데 익숙해지고 있지는 않은가.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 답답한 마음에 텅 빈 와이탄을 혼자 한참 서 있었던 적이 있다. 저 멀리서 꽃파는 할머니가 성큼 가까이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이 시간에 혼자 뭐 하고 있느냐고 호통을 치셨다. 나는 나도 모르게 학교생활이 너무 힘들다 대꾸했는데, 그러자 할머니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앞니가 다 빠진 할머니는 인생을 파도에 비유한 구슬픈 노래를 힘차게 불러주시고는, 등에 짊어진 꽃 무더기 속 시든 장미 두 송이를 건네며 어서 집에 가라고 또 한 번 호통치셨다. 그날 밤 꽃파는 할머니는 잘 곳을 찾으셨을까. 빛의 속도로 바뀌는 세상에서 사람을 대하는 일만은 아날로그로 남길 바란다.
 
상상(sangsang.story@outl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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