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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탁쿤이

[2019-07-16, 14:37:36] 상하이저널
탁쿤이는 나의 첫 중국어 선생님이다. ‘이탁쿤’이라는 생소한 이름은 자신의 중국어 이름에 한글의 음을 붙인 것이라고 했다. 탁쿤이를 처음 만났을 때 뿔테 안경을 쓴 모습이 꼭 중학생 같았고, 목소리는 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의 중간 그 어디쯤이었다. 어학 선생님으로서 자질이 의심스러웠으나, 더운 날씨에도 구슬땀을 흘리며 찾아와 중국어를 가르쳐 주는 성실함에 금새 정이 들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상하이 생활이 처음인 나와 남편, 두 살배기 딸아이의 내비게이션은 상하이저널이었다. 가 볼 만한 거리 소개에 따라 우리 가족은 탁쿤이와 함께 안푸루를 둘러보기로 했다. 각각의 화풍을 담은 조그마한 갤러리들이 자리한 안푸루. 그 곳엔 다양한 크기와 화풍, 색채들을 담은 액자들이 빼곡히 걸려있었고, 바닥에도 작품들이 차곡차곡 겹쳐져 있었다. 

한국을 떠나오기 직전 들러봤던 인사동 갤러리의 감각적인 모던함과 대비됐다. 안푸루의 갤러리는 고풍스러운 옛날 냄새가 났다. 그때 유행했던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사람들 그림은 유머러스하고 색과 디자인이 강렬했다. 소박하고 오래돼 보이는 작품에서 이름 모를 작가의 예술혼이 나를 잡아 끌었다. 탁쿤이는 딸아이를 자신의 첫 조카나 되는 듯 안아주고, 잘 놀아주어 그 시간만큼은 자유롭고 행복했다.

십 년 정도 후 다시 찾은 안푸루에는 노랑머리 외국인들이 햇빛을 받으며 여유로운 점심을 즐기는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연노랑 파스텔톤의 담벼락, 초록 초록 사랑스러운 가로수가 맞닿은 길엔 카페와 소문난 맛집이 줄지어 있고, 앤틱 가구점이 손짓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길의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뒤져보았으나 예전에 기억하는 안푸루의 작은 갤러리들은 추억으로만 아련한 곳이 되었다. 

한번은 청명절 즈음 변함없는 우리의 상하이 내비게이션을 따라 창저우의 딸기밭에 딸기를 따러 갔었다. 집 근처에서 탁쿤이를 태우고 달리고 달려서 도착한 창저우공원은 겨울처럼 추운 이상기온이었다. 우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야심 차게 준비해간 바비큐로 공원에 냄새를 피우고, 오늘 활동 예정이었던 딸기 따기 대신 일단 배를 채웠다. 탁쿤이가 준비한 층층이 도시락엔 얌전하게 줄 선 김밥과 샌드위치, 과일 등이 수줍은 자태를 드러냈다! 이걸 싸느라 분주했을 새벽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과 감동이 밀려들었다. 

그녀는 나의 짧은 중국어 선생님 노릇을 끝내고, 대학가에서 한국 액세서리 가게를 하다가 한국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그 후 온라인에 한국 의류 가게를 열어 직접 물건을 떼고, 모델이 되어 사진을 찍어 올려 운영해 나갔다. 소년 같았던 그녀는 패션피플의 향기를 분사하며 어른이 되어갔다. 

우리는 각자 바쁘게 사느라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가끔 짬을 내어 즐거운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우리의 만남은 매번 정겹고 아쉬웠다. 나는 탁쿤이가 소중한 인연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기도 낳아 상하이에서 자주 왕래하며 살길 바랐지만, 지금 그녀는 호주에 살고 있다. 얼마 전에 기다리던 보석 같은 아들이 태어나 고단하지만,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상하이에서 큰 의지가 돼 준 탁쿤이가 타지에서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살기를 마음 속으로 늘 응원한다. 탁쿤 加油! 

여울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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