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도④ 송(宋)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도시, 카이펑

[2016-10-22, 03:54:27]

중국의 고도④
송(宋)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도시, 카이펑

7대 고도(古都), 카이펑


황허강 남쪽의 대평원에 있으며 연변에 위치하고 있는 카이펑(开封)은 중국의 7대 고도(古都) 중 하나이다. 오늘날에도 중국 중원경제구(中原经济区)의 핵심도시 중 하나로써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도시 카이펑에 대해 한 번 알아보자.
춘추 전국시대의 위(魏)부터 5대 10국의 양(梁), 진(晋), 한(汉), 그리고 북송(宋)까지 많은 나라들이 이곳을 도읍지로 삼을 만큼 카이펑은 고대 중국 역사 중에서 중요한 도시 중 하나이다. 특히, 카이펑은 운하가 개통되기 시작했던 북송 때 크게 번성하였다. 성벽의 길이가 20km가 넘었고, 100만의 인구가 살았을 만큼 카이펑은 그 어느 도시 못지 않게 번성한 도시였다. 명나라 초, 주원장(朱元璋)은 카이펑을 수도로 정하고 카이펑을 ‘카이펑부(开封府)’라 불렀다. 이로 인해 카이펑은 중원의 첫 번째 대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카이펑의 비극은 이때 시작되었다. 1642년, 카이펑에는 아주 큰 홍수가 찾아왔다. 홍수는 16일간 지속되어 왔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고, 많은 유적지들이 훼손되었다. 이 후, 명나라는 수도를 남경(南京)으로 옮겼고, 1662년 청나라가 되어서야 카이펑은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유적지들은 대부분 청나라 강희제(康熙)때 복원된 것이다.

 

용정공원(龙亭公园)


카이펑을 여행 할 때,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아 가는 곳은 용정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카이펑은 옛날부터 변주(汴州)라고 불리다가 5대 10국이 들어서고 많은 나라들이 이 곳을 수도로 삼으면서 동경(东京)이라 칭했다. 당나라 때, 용정공원은 많은 번진(藩镇) 중 하나로, 지방관인 절도사의 관청이 있던 자리였다. 그러나, 5대 10국이라는 혼란시기에 들어서면서 용정공원은 황궁으로 바뀌었고, 송을 포함한 후대에 다른 나라들도 이 곳을 황궁으로 사용하였다. 지금의 ‘용정공원’은 청나라가 북송 황궁의 유적지에 만들어져서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이곳에 있는 용정까지 올라가려면 72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가운데 거대한 용들의 모양이 펼쳐져 있고, 계단 외벽은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어 왕의 강인함과 위압감을 나타낸다고 한다. 또한, 매년 가을이 되면 이곳에서는 국화꽃 축제가 벌여진다. 그 때가 되면 용정공원에는 국화꽃으로 둥근 공모양도 만들고 국화꽃으로 나무를 세우기도 하며 국화꽃으로 공작새의 모양을 만듦으로써 공원에 아름다운 색채를 더해준다.
•개방 시간: 오전 8시~오후 7시
•입장료: 50元

 

철탑공원(铁塔公园)


카이펑에서 용정공원만큼 유명한 곳이 바로 철탑공원이다. 원래 명칭은 우국사지탑 이지만 철탑이라고 불려지는 이 탑이 이곳을 유명한 명소지로 만들었다. 이 탑은 8각형의 13층 탑으로 송나라 시대 1049년도에 만들어 졌다. 이 탑은 카이펑에서 있었던 대홍수 때도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 아주 진귀한 탑이다. 이 탑은 이름과 달리 철로 만들어지지 않고 적색, 갈색, 남색, 녹색등의 구운 유리벽돌로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멀리서 탑을 보았을 때 마치 철로 만들어진 것 같은 착시효과를 보여서 후대에는 ‘철탑’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이다. 탑의 벽돌에는 부처, 사자, 천사 등의 무늬가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또한,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오르면 카이펑을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다. 이 철탑은 카이펑8경의 하나이며, 유리벽돌로 지은 탑 중 현존하는 최고의 탑이어서 ‘천하 제 일 탑’이라고 칭해지기도 한다.
•개방 시간: 오전 9시~오후 8시
•입장료: 40元(학생, 현역군인 반값), 탑 오르기 30元

 

포공사(包公祠)


포공사는 중국고대 저명한 청렴한 관리, 정치개혁가 포증(包拯)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포증은 송나라 시대의 정치가로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기로 유명하다. 또한, 왕족까지 잡아들이는 곧은 절개와 부패와 타협하지 않는 굳셈이 이 곳 포공사의 주인 포증의 특징이다.
포공사는 전체를 총 대전(大殿), 소전(二殿), 동서전(东西配殿)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대전은 전체 건물의 중심이며, 3m가 넘는 커다란 포증의 좌상(坐像)이 있다. 그 상 옆으로는 카이펑의 다양한 역사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소전에는 ‘카이펑부거명기(开封府提名记)’라는 유명한 석비가 있다. 이 비석은 북송 때 유물이다. 이 비석은 포증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를 보여준다. 동성전에서는 포증의 그림과 글이 풍부하고 뛰어났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들이 많이 있다. 이 곳에서는 포증의 관한 다양한 전설과, 역사 이야기와, 민담 등을 전시해준다.
•개방 시간: 오전 7시~오후 7시
•입장료: 20元

 

허난성(河南省) 박물관


카이펑에 송이 잠들어 있다고 말해도 그것은 과언이 아니다. 모든 것들이 침수되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송나라의 유물들이 현대에 와서 도시가 재건이 되면서 무더기로 발굴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라 등 온갖 유물들이 쏟아져 나온 카이펑시의 값진 유물들은 모두 대만의 대만에 있는 국립고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1945년 후부터 발굴된 유물들은 북경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가치가 많은 소장품들은 대부분 대만과 북경으로 넘어갔지만 대부분의 소장품들이 정주시에 위치하고 있는 허난성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곳은 송나라 때의 유물들뿐만 아니라 은대 중기의 청동기, 신양장태관초묘(信陽長台關楚墓)에서 발굴된 춘추시대 칠기류와 당대의 유물들까지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송나라는 중국 역사 중에서도 아주 중요한 왕조이다. 이러한 송나라가 살아 숨쉬었던 도시 카이펑은 역시 중국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도시이다. 송나라가 문치주의를 펼쳤던 나라인 만큼 카이펑은 많은 학자들과 상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던 대도시였다. 그 당시에는 지금의 상해, 북경 못지 않게 발달된 도시였다. 그 곳 도시인의 생활은 그만큼 윤택했고 많은 외국인들이 드나들면서 문화적 교류도 풍부해져서 그 시대 문화의 중심지였다. 비록, 황하에 대홍수로 인해 지금은 송나라의 영화가 많이 사라졌지만, 카이펑에는 여전히 문화 발달의 전성기였던 송나라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기회가 된다면 이곳에 방문해 송나라 때의 중국을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고등부 학생기자 박주은(상해한국학교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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