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도 모르는 중국시장 이야기]
당신의 카드는 안녕하십니까?
“우리 딸을 신용불량자로”
최근 필자는 중국의 한 신문에서 아주 흥미로운 기사를 접했다. “제발 우리딸을 은행 블랙리스트에 넣어달라(拉黑)”는 아버지의 절절한 사연이었다. 사연은 어느 날 28세의 과년한 딸을 가진 왕선생(王先生)에게 9장의 은행신용카드사로부터 19만위안(한화 3400만원)의 카드빚을 갚으라는 통지를 받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부채뿐만 아니라 아직 12개월로 나눠서 납부하고 있는 잔여 결재액이 4만위안이 남았으니, 딸이 갚아야 할 카드빚이 무려 23만위안(한화 4000만원)이 된다는 것이다.
왕선생은 딸을 불러 도대체 이 많은 돈을 어디에 사용했냐고 캐물으니 딸은 그렇게 카드빚이 많을 줄 몰랐다는 것이다. 그냥 친구랑 맛있는 거 먹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인형과 옷, 일용품 등을 구매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구매한 물건 중에는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고 한번은 3~400위안 하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구입하고 며칠 사용해 보지도 않고 3~40위안에 되팔아 버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런 광적인 쇼핑행태는 둘째 치고라도 어떻게 월급 5000위안을 받는 딸이 카드 한장 당 몇만 위안의 한도를 가질 수 있는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러장의 카드 중에는 심지어 엄마명의로 발행된 카드 조차 발견되었다. 물론 엄마는 모르고 있는 사실이다.
中 무분별한 카드발급, 휴면율 50%
과연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것은 은행카드 모집영업사원들의 경쟁적인 카드발급 영업활동과 더불어 고객들의 카드발급 행태에 그 이유가 있다. 중국사무실에서 근무하다 보면 가끔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 은행카드영업사원이 사무실을 방문해서 카드를 가입하라고 권유한다. 물론 이때 개인의 상환능력과 신용도는 크게 상관하지 않으며 물건을 팔듯이 카드한도를 흥정한다.
또 친구 중에 은행에 카드영업을 하고 있다면, 예전에 우리나라의 보험영업이 그랬던 것처럼 친구의 체면(面子)를 세워주느라 가입하기도 한다. 엄마명의의 카드 또한 이런 경우를 거쳐 신분증 번호만 제시하고 딸이 발급받게 된 카드였다. 실제 중국에서 카드가 발급되고 사용되지 않는 휴면율이 50%에 육박한다는 것이 이런 행태를 잘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이다.
카드 한도가 빠르게 증액되는 이유 또한 살펴보면 은행이 고객등급을 정하는 방법에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한국처럼 개인의 상환능력과 상환이력 등의 신용도에 따라 고객신용등급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액과 빈도에 따라 구분된다는 것이다. 얼마를 쓰고 잘 갚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은 금액을 사용했느냐가 카드한도를 정하는 주요한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문제의 왕선생 딸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한도는 늘어났고, 또 늘어난 한도만큼 소비를 멈추지 못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된 것이다. 여기에다 소비가 늘어나고 카드하나로 결재를 처리하게 못하게 되자 카드돌려막기로 채무를 늘이게 되고, 이 과정에서 채무는 원금과 이자로 눈덩이처럼 빠른 속도로 커지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왕선생은 딸이 더 이상 카드를 사용할 수 없도록 딸을 은행의 불량고객 즉, 블랙리스트에 올려달라고 애원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은행입장에서 왕선생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 은행에서는 계속 신용매출이 일어나고 이자가 발생하는 우수고객(?)을 거부할 의사도 없을 것이며, 더욱이 블랙리스트라는 것 조차 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10년전 한국 카드대란과 유사
“최소결재, 무분별한 소비와 카드발급, 카드 돌려막기……”
이런 용어들이 왠지 어디에서 많이 본 것 같지 않는가? 많이 낯익은 이 용어들은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해져 가는 2003년 한국의 ‘카드대란’때 매일 신문지상에서 오르내리던 용어였던 것이다.
2003년 카드대란의 아픈 기억을 잠깐 떠올려 보면, 국내 내수진작을 위해 정부는 카드소비를 활성화하고 발급완화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를 통해 무분별한 소비가 발생하고 이 소비가 낳은 채무는 카드사의 부실을 낳게 되고 결국은 카드사의 파산과 매각등으로 300백만명의 신용불량자가 발생하게 된 사건이다. 당시 카드 모집은 길거리 좌판에서도 가능했고, 소득증빙 하나없는 대학생, 미성년자에게도 카드를 발급해 주게 된다. 결국은 상환능력이 없는 고객에게 카드대금을 회수하지 못해 카드회사가 문닫을 즈음에 이르러자, “카드사가 문닫으면 빚을 안갚아도 되겠지”라는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상식적이지 못한 도덕적 해의 조차 발생하게 된다.
2003년 카드대란 상태의 한국의 신용카드사의 상황을 보면 전업카드사 8개사, 카드 이용액이 517조3000억정도였다. 또 2002년 국민총소득 대비 신용카드 사용비중이 36.8% 이르렀고, 카드대란 직전 연체율이 28.3%나 되었다.
중국은행협의 자료에 따르면, 현재 카드발행 수는 2012년 벌써 3억장이 넘어섰고 매년 4~5000만장의 신규카드가 발행되고 있어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비록 9개 카드발행은행의 평균 불량율의 1.26%에 그치고 있어 수치상으로 크게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2013년 중국의 6개월이상 신용카드 연체율은 72%나 증가했다. 그리고 현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신용카드 가입형태나 소비형태, 더욱이 젊은이들의 소비마인드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10년전 우리의 실수를 떠올리기 충분하다.
공교롭게도 신용카드 대란직전인 2002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2,100이었고, 현재 베이징, 상하이, 톈진, 선전, 광저우 등의 중국주요 대도시의 1인당소득이 $12,000을 육박하고 있다. 소득이 적정수준이 넘어서게 되면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는데, 지금 중국의 소비자들의 소비에 대한 기호와 패턴이 10년전 한국의 그때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의 소비행태, 인민의 고통으로 다가 올 것
시장에서 유통과 소비의 흐름은 시대와 나라를 불문하고 거의 비슷한 사이클과 패턴을 보여왔고 이러한 사실은 미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의 과거 유통형태의 발달과정이나 소비형태의 변화추이를 비춰보면 잘 알 수 있다. 중국 내수시장의 확대, 중국 인민들의 소득증가, 중국 소비시장의 폭발적인 성장과 신용카드의 급작스런 사용 확대는 지금 또는 가까운 미래에 큰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 예상된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중국시장이 이런 오류를 극복하고 건전하고 성숙한 소비경제가 발전하는 한 과정으로 삼으며 더 발전할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잘 준비되지 않는 시장의 충격은 대부분의 중국 인민들에게는 큰 고통으로 다가올 것이다. 지금 중국인민은 자기 주머니를 돌아보고 소비를 해야 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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